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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제라르 뱅데]사생활 ‘제로’로 달리는 사회

입력 | 2008-06-27 03:12:00


꼭 60년 전인 1948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신작 소설에 ‘최후의 유럽인’ 또는 ‘1949년’(책이 출판된 해를 의미)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 출판사는 그가 내놓은 제목을 버리고 책을 쓴 해의 마지막 두 숫자를 바꿔 ‘1984년’이란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은 동서 진영의 핵전쟁으로 영국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 개인의 자유가 사라지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든 주민의 행동을 감시하는 ‘빅 브러더’가 등장한다.

60년 만에 기술의 발전으로, 또 테러리즘의 발호로 ‘빅 브러더’의 세계가 도래했다. 기술은 생활에 편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생체확인 여권, 감시 카메라, 악한 사람들이 입수하면 가공할 무기가 될 수 있는 자료와 서류 등등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고 제공한 정보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사용된다.

테러리즘과의 전쟁도 오웰이 상상한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국가는 ‘적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의 보호와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 등 감시 장비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그 결과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상업적인 사적 영역이 증가했다. 선진국에서 부유층은 사적으로 보호된 영역에서 산다. 런던의 사유지 내 도로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돼 있다. 전통적 시장을 대체하는 상업센터에서는 집회나 연설이 허용되지 않는다.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은 ‘감시되는 자유’의 민주체제를 원한다.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집요하게 기록되고 촬영되고 저장된다. 이런 감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삶의 영역은 거의 없다. 이런 자료가 점점 많아질수록 우리의 자유가 행사될 수 있는 남아 있는 최후의 사적 영역마저 사라져갈 것이다.

최근에는 휴대전화만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등장했다. 이를 통한 ‘미행’의 가능성도 열렸다. 구글은 올해 1월 구글맵 프로그램에서 ‘나의 위치’라는 새 기능을 선보였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하지 않고도 휴대전화가 인근 안테나에 보내는 신호로 소지자의 위치를 찾는 기능이다. 일리코넷(Illico.net)사는 학부모들에게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를 소지한 아이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도시에서는 그 정확성이 거의 몇 m 차이이고 안테나가 많지 않은 시골 들판에서도 1∼2km 차이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사생활은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에 의해 보호되지만 이 조직의 업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인터넷 전화는 전화회사에 공식 요청하지 않아도 그 전화기의 위치와 오고가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구글 같은 다국적 기업의 경우 외국에서 서버를 운영하고 있어 국가의 보호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신용카드, 회원카드, 교통카드 등 전자칩 카드는 각각 다른 코드 번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 특징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생체확인 기술의 도입은 이렇게 산만하게 흩어진 자료들을 쉽게 통합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같은 사람의 손에 그런 수단이 들어갈 불행한 사태를 상상해보자. 이런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가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사생활을 지켜주던) 익명은 완전히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다행스럽게도 우리들의 부모 세대처럼 모든 주민이 서로 알고 지내던 작은 마을의 분위기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