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밀란 출판사의 선임편집자 해럴드 라탐이 애틀랜타 출장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가려는 길이었다. 조그마한 여성이 두툼한 꾸러미를 내밀었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이 원고 어서 가져가세요.” 전직 신문기자 마거릿 미첼이었다.
빛나는 재능을 눈여겨봐왔던 라탐은 원고를 받아들고 기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미첼은 생각이 변해 급히 전신을 보냈다. 원고를 되돌려 달라고. 그러나 라탐이 이미 큰 가능성을 읽은 뒤였다. 미첼의 손에는 원고 대신 수표가 쥐어졌다. 그리하여 1936년 6월 30일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됐다.
‘바람과 함께…’는 맥밀란 출판사에 있어 ‘굴러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소설이 출판된 그해 전 직원이 급여의 18%에 달하는 상여금을 받을 정도였다. 하루에 5만 부씩 팔려나간 날도 있었고, 출간 6개월 뒤에는 10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미첼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첼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애틀랜타 역사학회 회장이었고 어머니는 여성 참정권론자였으며 외할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가한 남군 장교였다. 미첼은 대학 졸업 뒤 1922년 미국 남부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 ‘애틀랜타 저널’에 취직했다. 남북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을 소개하는 기사로 미첼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취재가 ‘바람과 함께…’ 집필 과정의 시작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기자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으나 1926년 발목 골절로 미첼은 일을 그만뒀다. 병상의 아내가 지루하지 않도록 남편 존 마시가 도서관에서 역사서를 대출해 오곤 했다. 미첼이 상당한 분량의 역사서를 섭렵한 뒤 마시는 제안했다.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소? 그러지 말고 직접 책을 써보는 건 어때요.”
미첼은 낡은 레밍턴 타자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챕터를 가장 먼저 집필했다. 흐름과 상관없이 챕터를 건너 뛰어가며 썼다. 이야기의 연속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남편은 원고를 꼼꼼히 읽었다. 그러나 그 소설은 친구들에게조차 비밀이었다. 원고가 차츰 늘어나자 수건으로 둘둘 싸 침대 밑이나 옷장 속에 숨겨뒀다. 남편의 따뜻한 격려 속에 미첼은 스스로 즐거워서 글을 썼던 것이다.
수십 년간 ‘바람과 함께…’가 미첼이 쓴 유일한 소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95년 또 다른 작품 ‘사라진 섬, 레이즌(Lost Laysen)’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첼이 16세 때 연인 헨리에게 준 소설로 임종 후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고 한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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