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천재교육 공동 주최로 5월 18일 실시된 2008년 상반기 ‘해법수학학력평가(HME)’에서 약 2만5000명의 초등학교 6학년 참가자 중 유일한 만점자(150점)인 김영한(경남 창원시 삼정자초교 6년·사진) 군. 김 군은 “생활 속 놀이를 통해 수학과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이 수학 실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최근 소설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김 군은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수십만 대군이 전투가 끝난 뒤 수 천명으로 줄어들려면 위나라와 촉·오 연합군이 몇 대 몇의 비율로 사망했는지 알아보는 비례식을 만들어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총 11만982명이 응시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초등 6학년생은 2만4971명으로 전체의 23.8%를 차지했으며 평균점수는 83.8점(150점 만점)이었다.》
해법수학 학력평가 6학년 유일한 만점자 김영한 군
○ 양치질하며 배수놀이, 과일 자르며 분수놀이
김 군이 지금과 같은 수학 실력을 기르기까지는 어린 김 군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엄마 조희정(39) 씨의 영향이 컸다.
조 씨는 “영한이는 서너 살 때부터 유달리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며 “동화책을 읽어줘도 이야기보다 그림에 있는 동물의 수를 세거나, 책장을 앞뒤로 넘기면서 페이지를 표시한 숫자가 바뀌는 것에 흥미를 보이곤 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유아를 상대로 개설한 블록 쌓기나 가베나 은물(나무 등으로 만든 교육용 완구)을 활용한 놀이수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김 군의 수학적 재능을 확신한 조 씨는 가정에서도 생활 속 다양한 상황을 활용해 숫자 감각을 길러주려고 노력했다.
간식시간에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이등분, 사등분, 팔등분으로 잘라 보면서 ‘분수’라는 용어는 몰라도 그 뜻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했고, 식사 후 이를 닦으면서 ‘2의 배수는 2, 4, 6, 8 ……, 3의 배수는 3, 6, 9, 12……’ 하는 식으로 양치질 리듬에 맞춰 배수 말하기 놀이를 했다.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면 앞차 번호판 숫자를 읽는 놀이를 하면서 자릿수가 높은 숫자를 읽는 법을 가르쳤고, 구슬이나 바둑알을 쌓아 놓고 서로 빌려주거나 여러 묶음으로 나눠보는 놀이를 하면서 연산에 대한 기본개념을 익혀 나갔다.
타고난 재능에 엄마의 노력이 더해져 김 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본적인 사칙연산은 물론, 억 단위 숫자까지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한동안은 긴 한글 문장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글보다 수학을 더 빨리 깨우친 셈이었다.
○“증명 과정 있는 도형문제 풀이 줄겨요”
김 군에게 한 번이라도 수학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은 “영한이는 수학에서 재미를 느끼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어려서부터 반복되는 계산 훈련에 지쳐서 수학에 흥미를 잃어버려 ‘재미없고 지루한 과목’으로만 기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조 씨는 “학원이나 학습지를 무리하게 강요하기보다,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길러주려고 한 것이 영한이가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김 군이 수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역은 ‘도형’이다. 여러 단원의 학습내용을 연계한 문제가 많은 도형 부분은 이번 대회에서도 남녀를 불문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답률이 떨어진 영역. 하지만, 김 군은 “도형 문제는 다른 영역에선 자주 다루지 않는 증명 문제가 많아서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고 말한다.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의 대처법도 또래 친구들과 사뭇 다르다. 답지를 확인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 같은데, 김 군은 스스로의 힘으로 정답을 구할 때까지 요리조리 새로운 풀이법을 몇 번이고 시도한다.
문제 풀이에 골몰해 자정을 훌쩍 넘겨 오전 두세 시까지 수학 삼매경에 빠지는 날도 종종 있다. “하루 평균 두 시간 정도 수학 공부를 하는데, 가끔 문제 풀이에 ‘필(feel)’을 받는 날에는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밥 먹는 것도 잊는다”고 김 군은 말했다.
지난해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 시험에 합격해 현재 경남대 영재교육원에 다니는 김 군은 얼마 전부터 내년 봄에 실시될 예정인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준비에 들어갔다. 또래 상위권 학생들은 진작에 시작한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도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원에서 KMO를 준비하는 중학교 형, 누나들 틈에서 공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김 군은 “형들이 귀엽게 봐줘서 적응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김 군은 내년 KMO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나중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대표로 출전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수학을 이 정도로 좋아하면 당연히 세계적인 수학자를 꿈꿀 것 같은데 김 군의 장래희망은 의외로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다. “아빠는 수학자, 엄마는 치과의사를 권하시는데 저는 생물학자가 좋아요. 나중에 암이나 에이즈 같은 난치병을 고치는 약을 개발할 때 제 수학 실력이 분명 도움이 되겠죠?”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