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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2008생생토크]“체격보다 기술이 중요” 老감독의 웅변

입력 | 2008-07-01 02:58:00


스페인 선수들이 우승한 뒤 감격에 겨워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을 헹가래친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선수들은 마치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헹가래쳤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28일에 70세가 된다. 그는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연출했다. 44년 전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후보 선수였던 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대역사를 썼다. 스페인 선수들이 폭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스피드를 앞세워 헐크 같은 독일 선수들을 요리하며 ‘덩치 큰 선수들이 늘 이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평균 체격이 172cm, 69kg이었다. 독일 선수들은 평균 10cm가 더 크고 10kg이 더 나갔다. 독일은 스페인 선수들이 기술이 좋기 때문에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가서 스페인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자신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스페인이 페르난도 토레스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스페인이 경기를 주도한 것으로 보면 최소한 세 골을 더 넣었어야 했을 경기였다. 스페인은 13개의 슛을 날렸고 7개가 유효 슈팅이었다. 독일은 고작 4번의 슈팅에 스페인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의 손에 잡힌 것은 한 개에 불과했다.

스페인의 승리는 스페인과 남미에 있는 라틴 선수 전부의 승리다. 스페인은 축구에서 체격보다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증명했다. 스페인의 승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4강에서 스페인의 벽에 막힌 뒤 거스 히딩크 러시아 감독은 “스페인의 최고 무기는 정확한 패스와 냉정한 기술이었다.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 말이 맞았다. 볼 컨트롤이 좋은 스페인과 경기를 하면 지친다. 스페인은 많은 기회를 만들었다. 토레스의 골은 정말 가치가 있었다. 스페인의 길고 멋진 축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상이었다. 국왕과 왕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귀빈석을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스페인은 젊다. 2년 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도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라고네스 감독은 그때 없다. 아라고네스의 최대 업적은 지역색이 짙은 선수들을 화합하게 한 것이다. 마드리드와 세비야, 바르셀로나, 그리고 바스크. 스페인은 어떨 땐 한국처럼 여러 개로 갈라진 나라였다. 아라고네스는 “우리는 한 동포”라고 선수들을 설득했다. 70세에도 축구는 그의 전부다. 그는 대표팀은 떠났지만 은퇴는 하지 않았다. 아마 터키의 페네르바체를 지도할 것이다.

“스페인을 누가 맡을지는 모르지만 선수들을 편견 없이 잘 대해 주고 스스로 뛰게 만들어라. 나는 그렇게 했다.” 아라고네스 감독의 마지막 충고다.―오스트리아 빈에서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