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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면 안 산다” 제 발등 찍는 한국 소비자

입력 | 2008-07-01 15:32:00


'한국에서는 싸면 안 팔린다?'

자동차, 비타민 등 수입 제품의 가격이 과도한 마진으로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시형 소비를 즐기는 한국 소비자들은 대부분 이 같은 제품들을 구매하는 데 큰 저항이 없어 수입업체들은 손쉽게 큰 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자동차, 유류, 세탁용 세제 등 11개 품목의 수입품의 가격 수준을 선진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12개 도시와 비교한 결과 수입자동차는 미국에 비해 61.3%, 휘발유와 경유는 39.1%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1일 밝혔다.

조사 대상 품목은 밀가루, 설탕, 식용유, 세탁용 세제, 휘발유, 경유, 등유, LPG, 종합비타민, 자동차, 골프채였다.

비교 대상 도시는 서울(한국), 뉴욕(미국), 런던(영국), 프랑크푸르트(독일), 파리(프랑스), 도쿄(일본), 밀라노(이탈리아), 토론토(캐나다), 타이베이(대만), 싱가포르(싱가포르), 북경(중국), 홍콩(중국) 등 해당 국가 중에서도 물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곳들이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환율 등을 고려해 비교할 때 종합비타민은 이들 도시 중 서울이 5번째로 비쌌으며, 미국보다는 무려 3.5배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세탁용 세제는 12개 도시 중 4번째로 비쌌으며 아시아 주요도시 평균가격보다도 2.1배 비쌌다.

자동차와 유류의 가격은 미국에 비해 각각 61.3%와 39.1%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물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 비교해도 11개 품목 중 8개 품목이 값이 비쌌으며 종합 비타민의 경우 한국이 미국보다 무려 259.7% 값이 더 나가는 등 20% 이상 값이 벌어지는 품목이 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가격차는 환율, 국가별 정부정책, 세제(稅制), 물류비용, 노동생산성, 유통마진 등의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국내 판매중인 수입상품의 경우 부득이 하게 값에 영향을 주는 물류비나, 세금이 아닌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업체들의 과도한 마진 책정으로 인해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높아졌다는 게 소비자원 측의 설명이다.

특히 값이 비싼 종합비타민의 경우 병행수입이 제한돼 있어 한 가지 약품은 한 업체만 수입해 판매할 수 있는 구조. 이 때문에 관세, 부가세 등을 포함한 가격이 6000원인 비타민이 시중에서는 2만원의 마진을 붙여 무려 2만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세탁용 세제의 경우 4개 수입업체가 9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다 최근 원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 인상분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게 소비자원의 지적이다.

수입자동차의 경우 현지 본사→공식 수입업체→딜러→소비자 등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유통이 이뤄지는 데다 각 단계마다 마진이 붙어 1억 원짜리 차 한 대 값의 2000만~4500만원이 업체 마진으로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일본 브랜드 차량의 경우 마진이 50%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휘발유 등 유류 역시 국가별 세제 차이가 가격차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국내 4대 정유사가 98%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등 시장 내 경쟁이 제한돼 있어 소비자들은 '보다 싼 제품을 선택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터무니없이 높은 마진을 책정하는 품목 판매업체들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할 계획이다.

또 관계부처에는 화장품, 일반의약품 등의 병행수입 활성화와 현재 약국으로 제한돼 있는 종합비타민의 판매장소 확대 등 제도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나성엽기자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