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크게 낮은 3.9%에 그치는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2%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반기 무역수지가 1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수출 전선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은 1일 내놓은 '2008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이 상반기 5.4%에서 하반기 3.9%로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상반기 4.3%에서 하반기 5.2%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년 말 한은이 올 하반기 성장률이 4.4%에 이르고 물가상승률이 3.1% 가량 될 것으로 본 것과는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연간 성장률을 작년 말 전망치(4.7%)보다 낮은 4.6%로 내리는 한편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1.5%포인트 높은 4.8%로 조정했다.
물가 급등은 고유가로 석유제품 가격이 크게 오를 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이 물가가 더 뛸 것으로 보고 제품 값을 미리 올렸기 때문이다.
이날 통계청이 밝힌 6월 물가는 개인서비스 요금 상승 등의 이유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올랐다. 월간 기준으로 1998년 11월(6.8%) 이후 9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성장률 하락도 고유가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데다 실질 구매력이 감소한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있다. 실제 기업의 5월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감소했고, 같은 기간 소비재 판매금액은 0.6% 줄었다.
이런 양상이 계속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종전에는 저(低)성장 국면에서 물가가 빨리 오르는 추세를 감안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거론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성장률을 앞질렀다는 점 때문에 '눈앞에 다가온 현실'로 본다. 물가상승률이 성장률보다 높아진 것은 카드대란이 발생한 2003년 하반기 이후 처음이다.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산유국 간 담합으로 유가가 일시적인 오른 반면 지금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1~2개월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해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가 1997년 상반기 이후 처음으로 57억1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은도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는 마지막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낸 97년(83억 달러 적자)보다 많은 규모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면 제품 원가가 올라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이 심해질 수 있다"며 "기업 및 노동자가 고통을 분담하고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여 성장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