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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筆禿千管, 墨磨萬錠

입력 | 2008-07-03 02:59:00


筆(필)은 붓 또는 쓰다의 뜻이다. 聿(율)은 손으로 필기구를 잡은 것을 나타낸, 붓을 가리키는 본래 글자이다. 秦(진)나라 이후에 주로 대나무로 자루를 만들었으므로 竹(죽)을 더해 筆(필)자를 만들어냈다.

禿(독)은 털이 빠진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붓이 닳아 못쓰게 됨을 가리킨다. 독(禿)수리는 머리에 털이 없는 수리이고, 禿山(독산)은 민둥산이다. 禿筆(독필)은 털이 빠진 붓으로 글 솜씨가 없음을 비유한다. 管(관)은 대롱 또는 붓대이다. 여기서는 붓을 세는 말로 ‘자루’에 해당한다.

墨(묵)은 먹이다. 磨(마)는 갈다 또는 갈아 없애거나 소모하다의 뜻이다. 또 갈리다, 즉 어려움을 당하다의 뜻도 있다. 好事多磨(호사다마)는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특히 남녀사이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여러 어려움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好事多魔(호사다마)라고도 한다. 錠(정)은 은덩어리나 알약인 錠劑(정제)를 가리키며, 알약이나 먹을 세는 말로도 쓰인다.

많음을 나타낼 때 흔히 千(천)과 萬(만)을 짝지어 쓴다. 울긋불긋한 여러 색깔인 千紫萬紅(천자만홍), 길고 긴 세월인 千秋萬歲(천추만세), 수많은 변화인 千變萬化(천변만화)가 그것이다. 또 식당 벽에 걸렸음직한 千客萬來(천객만래)는 많은 고객이 찾아달라는 바람의 표현이다.

못쓰게 된 붓이 무덤을 이루고 연못이 온통 먹물로 검게 된다면 王羲之(왕희지)에게는 못 미쳐도 王獻之(왕헌지)에게는 미친다고도 하였다. 왕헌지는 書聖(서성)인 아버지 왕희지에게 가려졌지만 역시 뛰어난 서예가였다. 예술인 서예가 그러하듯, 꾸준한 연습은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결정적 요소이며 또 믿음직한 인도자이다. ‘佩文齋書畵譜(패문재서화보)’에 기록된 蘇軾(소식)의 말이다.

오수형 서울대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