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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같지 않은 지하세계’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

입력 | 2008-07-03 03:00:00


지하 깎아내어 길이 250m 거대 계곡 조성

6층 높이 양쪽에 강의실 공연장 등 입주

설계한 佛 페로 “유리벽은 빛의 폭포”

열 미로-지하수로 환경친화 냉난방

지하 공간은 어둡고 답답하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CC·Ewha Campus Complex)는 이 통념을 깼다.

폭 25m, 길이 250m의 거대한 계곡 양쪽에 들어간 지하 6개 층(부피 35만 m³)의 공간. 연면적 7만 m²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건물을 통째로 파묻은 셈이다. 950석의 독서실, 41개의 세미나실, 5개의 유비쿼터스 강의실, 272석의 영화관과 670석의 공연극장이 들어서 있다.

4월 29일 개관해 9월 가을 학기를 준비하고 있는 ECC를 지난달 27일 찾았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도 지하 4층 구석에 위치한 카페는 밝고 쾌적했다. 복도 건너편 피트니스센터 창가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오른 학생들 앞으로 저녁 햇살이 환하게 비껴 내렸다.

마주 앉은 강미선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는 “낮에는 복도 조명을 꺼둔다”며 “창문이 적은 지상 건물보다 오히려 채광과 환기가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CC의 설계자는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55). 그는 2004년 2월 이화여대가 개최한 국제설계공모에서 자하 하디드 등 쟁쟁한 건축가들을 물리쳤다.

‘지하 건축’을 화두로 한 이 독특한 공모전에서 페로는 ‘지하 같지 않은 지하’를 제안했다. 지하 건축물에 따르는 채광과 환기 문제에 대한 고민을 커다란 계곡으로 해결한 것. 이 아이디어는 나선형 통로의 조형미를 강조한 경쟁자 하디드를 압도했다.

지하 공간은 페로의 장기다. 파리 국립도서관 한복판의 성큰 가든(sunken garden·햇볕이 드는 지하 공간), 독일 베를린의 사과나무공원 지하에 만든 올림픽벨로드롬과 수영경기장은 지하를 즐겨 활용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 준다.

거대한 지하 건축물인 ECC의 환기와 냉난방 시스템 디자인에는 최근 세계 건축계의 화두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파낸 땅과 건물 외벽 사이에 만든 폭 1m의 ‘열 미로(thermal labyrinth)’가 페로의 해법. 지하 공간이 지상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열 미로를 지나는 외부 공기는 지하 6층에서 내부로 유입되기 전까지 여름에는 7도 정도 식혀지고 겨울에는 10도 정도 덥혀진다.

최상층에서 내부 공기를 밖으로 뽑아내고 최하층에서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것 외에 냉난방 기계 설비는 최소화했다. 강 교수는 “자연적인 공기 대류 현상에 냉난방을 맡겼다”며 “로테크로 하이테크를 구현한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파낸 땅에서 나오는 지하수도 냉난방에 활용된다. 각 층 천장 속에 설치한 구불구불한 파이프와 벽면에 세워진 라디에이터에 지하수가 흐른다. 지상 공기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하수가 지하 1∼4층을 돌며 냉난방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 준다. 페로는 “열 미로와 지하수가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70∼80%를 감당한다”고 설명했다.

채광은 유리와 유광 스테인리스스틸로 ‘거울 커튼월(curtain wall)’을 만들어 해결했다.

이화여대 정문으로부터 ECC에 접근해 완만한 계곡 경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거울 절벽 사이에 선 느낌이 든다. 스틸 핀(fin)을 수직으로 붙인 유리벽이 하루 종일 여러 각도로 자연광을 반사하는 것. 페로는 이 두 벽을 ‘빛의 폭포’라고 불렀다.

바깥쪽 유리 외벽과 마주한 절벽에 조각조각 붙인 스틸 반사경도 자연광을 끌어들인다. 하중을 받지 않는 내부 벽은 대부분 유리. 표면 처리로 각 실의 내부를 엿보기 어렵게 해 프라이버시가 채광 때문에 희생되지 않도록 했다.

ECC는 건축을 숨긴 건축물이다. 깊고 넓은 계곡만이 두드러져 학교 밖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작은 공간들이 분산돼 있던 이화여대 캠퍼스는 이 계곡을 축으로 한 개방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계곡 위 조팝나무 사이 벤치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앉아 노을을 지켜본다.

기존 캠퍼스의 붕괴에 대한 논란은 건축가의 큰 고민이었을 것. 페로는 “건축물을 숨기고 정원과 야외극장을 만들어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그들의 공간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