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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100년-위안의 詩]조병화/‘하루만의 위안’

입력 | 2008-07-03 03:00:00


《힘들고 외로울 때 가슴에 파고들던 시 한 구절에 위로 받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때로 등을 다독여 주듯, 따사로이 안아 주듯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그 시들. 상반기 연재된 ‘현대시 100년-사랑의 시를 노래한다’에 이어 7월부터는 매주 목요일 ‘현대시 100년-위안의 시를 노래한다’가 연재된다. 문학평론가 김수이 경희대 교수, 시인 김경주 함성호 씨가 필자로 참여해 직접 고른 시와 해설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헤어진 다음 날’이라는 노래가 있다. 생생하고 사실적인 가사가 압권이다. 그에 따르면, 이별이란 이별 후에 찾아오는 ‘견딜 수 없이 긴 하루’를 견디는 일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에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이별뿐이겠는가. 시험에 실패하고, 직장을 잃고, 사랑하는 이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들…. 상처의 편에서 보면, 상처의 다음 날과 그 다음 날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우리가 살아온 많은 하루들이 그러했다.

그 ‘하루’에 바쳐진 이 시는 “잊어버려야만 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상처의 내용은 희미하게 그린 반면, 상처를 견디는 방법은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진정한 주어는 ‘나’가 아닌, “잊어버려야만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 자체라고 해도 좋겠다. 실제로 잊는 것과는 별개로, 잊어버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타이르는 것. 차라리 격려에 가까운 이 방법을 통해 ‘나’는 “그 사람”과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을 수락하며 또 다른 날들을 살 채비를 한다.

새로운 삶은 ‘나’의 힘겨운 실존을, 모든 생명은 흘러가는 존재라는 대자연의 섭리와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에 누워/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의 먼 미래와 연결시키는 성찰과 상상을 통해 열린다. 도정일의 말처럼, 문학은 인간이 경험하는 추락과 상처, 상실을 처리하는 기술이다. 조병화는 그 미학적이며 존재론적인 기술을 쉽고 독특한 스타일로 구사했다. 그가 수많은 하루를 위해 썼을 이 시는 1950년 4월에 발간된 같은 제목의 시집에 실려 있다. 선시집을 제외한 총 53권의 시집 중 두 번째 시집이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