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는 신사.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우산은 당연한 듯 여자 쪽으로 기울어 있다. 덕분에 신사의 어깨는 비에 흠뻑 젖는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자를 위해서 기울어져 있는 묵직한 느낌의 검은 우산, 그리고 우산을 받쳐 든 남자의 회색 수트와 곧은 등.
그 순간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도구가 아닌 남자의 단정한 매너와 품위, 묵묵한 따뜻함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고, 동시에 그는 평생 믿음이 가는 남자가 되었다.
많은 여자의 입으로부터 부러움 섞인 탄성이 나왔을 이 자동차 광고에서 자동차 보다 우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면 이 광고는 실패한 것일까?
사실 남자가 공공연하게 우산을 들게 된 것은 채 300년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햇볕과 비를 피하느라 우산을 드는 것은 여자의 행동이었고, 남자는 모자를 쓰거나 그냥 맞는 것이 남성적인 것이었다. 그때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야외에서의 시간이 줄어든 환경 때문인지 요즘엔 우산을, 그것도 멋진 우산을 받쳐 든 남자를 보기가 힘들다. ‘귀찮아서’ ‘차 있는데 뭘’ ‘잘 잃어버리니까’ ‘가까운데 뛰지’ 등 이유로 남자들은 우산과 멀어졌다.
우산은 모자와 더불어 신사의 오래된 패션 소품이다.
활동적이고 강건한 느낌을 주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만드는 고리 모양의 우산 손잡이는 수트 만큼이나 신사와 그럴 듯하게 어울렸다. 그런 맥락에서 어떤 순간에도 신사로서의 우아함이 배어 나오길 바라는 남자에게 지하철 입구에서 구입하는 투명한 비닐우산이나 파라솔을 옮기고 있는 듯한 색색의 골프우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3단, 5단에 자동으로 휙휙 접혔다 펴지고 바람이 불면 거꾸로 뒤집혔다가 다시 돌아오는 ‘첨단’ 우산이 많기도 하지만 신사의 우산이라면 역시 묵직한 나무 손잡이에 담담한 원단의 색이 수트와 잘 어울리는 클래식한 나무 우산이 제격이다.
튼튼한 나무 지팡이에 살과 원단을 하나하나 손으로 입히는 클래식 우산은 바람과 비에 매우 강하다. 견고한 등나무나 물푸레나무 소재의 우산은 그 묵직한 손맛과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색감이 오래된 책처럼 매력적이다. 거기에 감색이나 검은색의 잔잔한 줄무늬나 페이즐리 무늬라면 수트 차림에 완벽하게 어울려 비 오는 날에도 품위와 우아함을 잃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신사에게는 기대고 싶은 어깨가 있듯 들어가고 싶은 우산도 있는 법. 갑작스런 비에도 허둥대지 않고 멋진 수트 차림에 맞추어 섬세한 손놀림으로 부드럽게 우산을 펴 드는 신사. 그런 신사라면 평생 믿음이 가지 않을까?
한 승 호
아버지께 남자를 배우고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 수트 애호가
[관련기사]퇴근하고 30분 ‘백설공주’ 변신…‘홈필링’이 뜬다
[관련기사]여성의 당당함, 수트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