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하상백(32)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1월 선보인 자신의 브랜드 ‘HaSangBeg’의 디자이너, 패션모델, 아이돌 그룹 샤이니, 소녀시대의 스타일리스트, 케이블채널 M.net의 패션 프로그램 ‘트렌드리포트 필’ MC, 여기에 9월 에세이집 발간을 앞둔 작가… 옷만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닌 대중문화의 중심에 선 스타 디자이너. 뭔가 새롭고 신선한 것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 ‘젊은 피’, ‘별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수식어 ‘21세기 디자이너’….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지하남(地下男)’이라 말했고 미니홈피에는 ‘많은 것을 알려 하지 마’라는 선전포고까지 남겼다. 반팔 소매를 둘둘 말아 걷어 올린 그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하 작업실에서 마주 했다.
“TV를 안 본 지 5년이 넘었어요. 이런 지하에서 패션 일만 하고 싶어요. 어느 순간부터 모바일과 영화가 모든 문화를 빨아들이고 있고 패션이 ‘들러리’ 같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패션을 무겁지 않고, 재미난 것이라 알려주고 싶었죠. 나만의 경험을 녹여서요. 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새바람을 한번 쐬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선배 디자이너 중에 스타가 없었던 것도 아니죠. 그들과는 다른 어떤 DNA가 있나요?
“글쎄… 선배들이 패션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반면 전 ‘놀이’로 생각하죠.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속도의 개념을 집어넣어 동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패션과 디지털을 결합시키는 게 즐겁더라고요. 패션이 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삶의 리듬감을 잃고 싶지도 않고요. 클럽에도 가고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춰 DJ도 하고 방송도 하고… 확실한 것은 내가 뭘 하든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는 것이에요. 정말 행복한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하상백’을 검색하면 ‘게이’라는 단어가 딸려 나와요. 이런 의혹도 아무나 받는 건 아니죠?
“사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이 그런 의혹을 받는 건 화려한 면이 부각돼 흥미롭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 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굳이 게이다, 게이가 아니다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고요.”
웃을 때마다 그는 특유의 입가 주름을 보이며 마치 ‘인터뷰를 즐긴다’는 모습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그에게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3월 서울컬렉션을 방문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의 장피에르 모쇼 협회장과 영국패션협회 국제사무국 안나 오르시니 국장은 “하상백 쇼가 가장 신선했다”며 칭찬했다.
그가 믿은 것은 ‘열정’이었다.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입학 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자신의 브랜드 ‘·by Hasangbegi’를 만들며 최연소 디자이너로 주목받았다. 우주인을 보는 듯한 미래지향적 패션, 특유의 부피감, 형형색색의 화려함으로 대표되는 그의 패션은 젊은층에게 인기였다. 2001년 모든 것을 접고 그는 5년간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 디자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2006년 귀국해 ‘쌈지’의 캐주얼브랜드 ‘쌤’의 수석디자이너로 변신했다. 그리고 올 1월에는 속도의 개념을 첨가한 클럽 패션쇼 ‘다이너마이트’를 열었다. ‘팔리는 옷’보다 ‘내 스타일의 옷’을 만들기 원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그는 최근 신인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컬러 팔레트 색을 색칠공부하듯 칠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샤이니는 데뷔 전 컬러풀한 하상백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며 화제를 모았죠. 하지만 빅뱅을 너무 의식한 것 같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두 그룹 모두 5인조라 비교가 되죠. 하지만 빅뱅은 아주 멋있는 그룹이고 샤이니는 유치할 정도로 컬러풀한 것이 차이점이에요. 샤이니는 지극히 하상백 스타일이랍니다.”
―하상백 스타일이 뭔가요?
“패션은 옷으로 쓰는 나의 일기라 생각해요. 나에게 옷은 소모품에 불과해요. 빨간색 스키니 진도 내가 직접 겪은 경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만드는 거예요. 나를 잘 아는 것이 패션의 첫걸음이라 생각해요.”
경험 얘기를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한손에는 로봇, 다른 한손에는 알록달록한 인형을 들고 다녔다는 그는 중학생 때 우연히 위성TV에서 파리컬렉션 영상을 본 후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이어졌고 수차례 사랑의 매를 맞아야 했지만 ‘이걸 참으면 디자이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부모님과의 적대적인 양상은 의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후 달라졌다.
“학과 실기시험으로 갈색 벨벳치마를 만들었어요. 며칠 밤을 새우면서 만들고 A+를 받아 기념으로 어머니께 선물했죠. 그러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그 스커트를 개조해서 조끼로 만들어 입으셨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우리 부모님 없었으면 내 끼도 없었겠다’라는….”
―앞으로 목표는 뭔가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인가요?
“전 밀라노, 파리, 뉴욕 진출 같은 덧없는 꿈은 꾸지 않아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패션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어요. 패션의 가장 멋진 액세서리는 자신감 아니겠어요? 물론 그 전에 우리 부모님을 시끄럽고 정신없는 제 패션쇼 앞자리에 앉혀 드리는 게 더 큰 목표죠.”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