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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전주성]성공하는 개혁, 실패에서 배워라

입력 | 2008-07-04 02:58:00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 비전과 목표가 선명해야 하고, 이를 추진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충분해야 한다. 나아가 반대를 극복할 정치적 정당성이 필요하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개혁은 실패한다. 실제로 우리는 성공한 개혁보다 실패한 개혁을 주로 목격했다. 경제 분야가 특히 그렇다. 민주화 역사가 짧은데도 수평적 정권 교체가 거침없이 일어나는 것은 정부의 무기력에 대한 국민의 실망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권의 잔재 청산이라는 막강한 정당성을 부여받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다 보니 개혁의 초점이 흐려졌다. 주로 과거 정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이은 탓에 변화의 의지와 전략 또한 약했다. 그 결과 고도성장기의 누적 부실 제거와 같은 핵심 사안은 힘을 받지 못했다. 결국 정부의 실패가 어떤 가혹한 결과를 낳는지 교훈으로 남기고 떠났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 극복이라는 선명한 목표와 정당성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경제의 핵심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금융 부실을 털고 사회안전망의 기본을 다진 것은 좋았지만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 특히 정부 주도의 개도국형 자원배분 체계를 손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개방과 경쟁의 확산으로 경제 환경은 바뀌었는데 성장패러다임은 달라진 게 없으니 딱히 경제가 재도약할 길이 없었다. 선거 캠프가 활성화되면서 인재들의 편 가르기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과욕 부린 이전 정부 성과 적어

노무현 정부의 경우 경제구조의 불균형을 고치려는 의욕은 좋았지만 너무 많은 로드맵으로 인해 국정 우선순위가 분명치 않았다. 또 동북아 허브나 균형발전처럼 큰 그림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말만 앞서고 실천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앞의 두 정부와 같은 특별한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탓에 초반부터 개혁반대 세력의 저항에 시달려야 했다. 정책 자산도 예전만 못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정부 재정이 약해졌고, 승자독식 논리가 인사에 적용되면서 인재 풀이 현저하게 좁아졌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세금을 올리는 악수까지 두면서 정권을 헌납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며 강한 변화의 정당성을 얻었다. 지지기반인 보수 진영은 이참에 정부개혁과 규제완화를 밀어붙여 민간 중심의 경제구조가 정착되길 바랐다. 서민들을 포함한 대다수 중간 계층은 지지부진한 성장과 악화된 분배로부터의 반전을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지길 기대했다. 반면 진보 진영은 외환위기 이후 어렵게 정착시킨 사회복지의 틀이 흐트러지고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을 경계했다. 대선 이후 지난 6개월, 현 정부는 그 어느 계층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쇠고기 파동으로 뇌관이 빨리 터졌을 뿐 지지율 급락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얼핏 보면 현 정부는 높은 지지도, 작은 정부라는 분명한 비전, 지난 정부가 선물한 세금수입, 몇천 명에 이른다는 전문가 집단 등 개혁에 필요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품이 많이 낀 자산들이다. 정책목표의 우선순위, 정책수단의 적합성, 정책집행의 가능성을 포괄하는 전략적 집중도 역시 부족했다. 경제를 살리라고 국민이 쥐여준 권력을 전리품쯤으로 여기며 서로 다투는 모습을 밖으로 내보인 것도 실망스러웠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국민 신뢰라는 자산을 잃은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의 반사이익으로 얻은 지지는 오래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매를 빨리 맞은 것이 오히려 축복이 되려면 변화의 청사진부터 새로 짜야 한다. ‘747’과 같은 정치 구호나 대운하와 같은 개인 소신은 뒤로 물리고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는 핵심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 금융실명제나 구조조정과 같이 그나마 성과를 본 개혁은 충분한 국민 지지와 정권 차원의 집중도가 있을 때 가능했다.

국민 원하는 핵심과제 집중해야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실패를 만회하려 서둘러 다른 변화를 시도하면 더 큰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쉬어갈 때다. 대다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그것을 실천할 방안을 따져보는 일이 우선이다. 말이 행동에 앞서는 정부도 문제지만 행동이 생각에 앞서는 정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