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지구촌에서 매일 4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갑니다. 그중 꽃도 못 피우고 죽어가는 5세 미만의 영유아가 2만6000명에 이릅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동건(70) ㈜부방 회장이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국제로타리 회장 임기를 1일 시작했다. 한국인이 국제로타리 회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국제로타리는 본부 700명의 직원과 세계 7곳에 국제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203개국 122만 명의 회원을 지닌 세계적인 민간봉사단체다.
지난해부터 차기 회장 자격으로 미국 시카고 본부에서 근무해온 이 회장은 첫 공식 방문국인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길에 3일 한국에 잠시 들렀다.
“1일 회장으로 첫 출근을 하는데 전임 회장국인 캐나다 국기 대신 태극기가 게양돼 있더군요. 뭉클했습니다. 1927년 한국에 로타리가 들어온 뒤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젠 돌려줄 때가 됐습니다. 제가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덕분입니다.”
국제로타리는 1905년 시카고에서 출범했으며 현재는 정·재계와 문화계 리더들이 많이 참가하기 때문에 클럽회장과 지구총재, 국제로타리 이사직은 커다란 명예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로타리는 회원수로는 미국 일본 인도에 이어 4위(5만6000명), 본부 기부금 규모로는 세계 3위(연간 1000만 달러)다.
이 회장이 1년 임기 동안 역점을 두는 캐치프레이즈는 ‘꿈을 현실로(Make Dreams Real)’이다. 이 회장이 이날 입고 온 로타리 재킷의 윗주머니에도 이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꿈을 현실로’라는 말이 소박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어린아이는 미래의 꿈입니다. 로타리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곳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2년 전 ‘차차기 회장’에 선출된 뒤 임무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해 왔습니다.”
―임기 중 역점을 둘 사업은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갔는데 뼈만 남은 아기가 나오지도 않는 엄마 젖을 빨고 있었어요. 가진 것을 다 주고 오려고 했더니 주위에서 말려요. 도움이 안 되니 구조적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앞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와 손잡고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기아, 보건위생, 물 오염,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사업에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표정을 보니 아프리카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 생생하신가 봅니다.
“한 마을 15가구의 엄마와 아이들이 아무 기력도 없이 그저 앉아 있었어요. 어린이들은 기본적인 약품과 백신, 모기장만 있으면 예방할 수 있는데도 폐렴, 홍역,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합니다. 10센트에 불과한 탈수방지용 소금이 없어 설사병으로 사망합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로타리는 충격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지원과 봉사를 도모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국제로타리가 소아마비 퇴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국제로타리가 애쓴 덕분에 소아마비가 99% 퇴치됐지만 남은 1%마저 완전 물리치는 게 꿈입니다. 멀린다&게이츠 재단도 이 성과를 보고 국제로타리에 소아마비 박멸기금으로 1억 달러를 냈습니다.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는 2005년 로타리 국제대회에서 ‘지구촌의 마지막 소아마비 환자가 사라지는 날, 다시 한 번 축하하자’고 말했지요.”
―북한에도 어려운 아이가 많습니다만….
“국제로타리는 규정상 로타리가 있는 나라만 도울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로타리가 없으니 회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유엔 주재 북한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의 굶주리는 어린이들과 소아마비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 회장은 국제 자원봉사계에서 한국을 알리는 외교관 역할도 하고 있다. 모든 로타리 행사에는 회장국의 국기(태극기)가 게양되고, 국가(애국가)가 제창된다. 내년 6월 영국 버밍엄에서 열리는 제100차 로타리 국제대회에서는 영국의 소년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200여 개 회원국의 국기를 들고 입장하며, 태권도 시범 등도 펼친다.
―봉사와 나눔의 정신은 어릴 때부터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선친의 로타리 활동을 보면서 그 의미를 배웠습니다. 저도 30대 중반인 1971년에 로타리에 가입했는데 이때 선친이 사업에 매진하라며 만류하시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회장 같은 거 맡지 말고 성실하게 봉사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로타리 활동을 하면서 그 말씀을 내내 새기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통신과 기술이 발달한 요즘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이는 걸 꺼립니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타리 정신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늘 우리보다 못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몸으로 실천하기 바랍니다. 임기 동안 많은 젊은이가 로타리 정신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