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촛불시위에 가세한 일부 종교계 인사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그제 청와대를 찾아가 5개 항의 요구조건을 전달하려 했으나 청와대 측이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갈 수는 없다’고 해 방문하지 않았다. 이들이 내건 요구조건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 어청수 경찰청장 및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파면과 촛불시위 관련 구속자 석방 및 수배 해제, 대운하 및 교육 공공성 포기 계획 중단으로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폭력시위 관련자를 석방하라는 것은 정부가 법치를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교육의 공공성’을 거론한 것은 ‘경쟁 없는 하향 평둔화(平鈍化) 교육’에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얘기다. 대책회의의 오만이 갈 데까지 간 느낌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요구 앞에서 청와대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촛불시위 중단을 전제로 건의서를 전달하겠다고 해 기다렸으나 대책회의 내부에서 의견 통일이 안 됐는지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럼, 대책회의가 의견을 통일해서 찾아왔더라면 만나 협상이라도 할 작정이었단 말인가.
경찰은 그동안 조사를 통해 대책회의가 처음부터 불법시위를 기획, 주도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체포영장도 발부됐다. 청와대가 이런 세력과 거래라도 할 심산이었는가. 정부 대변인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들에게 ‘대화’를 제의한 것도 너른 공감을 사기 어렵다. 정부와 청와대가 이러면 현장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은 뭐가 되는가. 그러니 경찰이 어제 ‘이명박 탄핵투쟁연대’ 백은종 부대표를 체포하러 갔다가 “체포영장의 일부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백 씨의 말 한마디에 되돌아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로 경찰의 출두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간담회를 취소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상대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국법질서의 수호보다는 정권의 보신과 연명에만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이면 5년 내내 불법 촛불시위가 계속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