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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파이널 컷

입력 | 2008-07-07 02:59:00


《“아, 추억은 아름다워.”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해요. 근데 참 이상하지 않나요? ‘추억(追憶)’이란 ‘지난날을 돌이켜서 생각함’이란 뜻이잖아요? 그럼 부모님이 이혼해 상처받았던 순간, 그네 타면서 까불다 떨어져 팔이 부러졌던 순간, 동네 불량배들에게 골목길로 끌려들어가 흠씬 두드려 맞았던 순간처럼 전혀 아름답지 않은 기억들은 왜 그 ‘추억’에 들어있지 않은 걸까요? 혹시 인간은 아름다운 과거만을 선택적으로 회상하고픈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 건 아닐까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철학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영화가 ‘파이널 컷(The Final Cut)’이에요.》

[1] 스토리라인

가까운 미래. 인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저장하는 ‘조이칩’이 개발됩니다. 일부 부유층은 값비싼 조이칩을 구입해 자신 혹은 태어나는 자녀의 뇌에 심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내용이 조이칩에 저장되지요. 칩에 기록된 영상은 그 사람이 죽은 뒤 편집되어 장례식에서 영화처럼 상영되는데, 이렇게 기억을 편집하는 작업을 ‘리메모리’라고 부릅니다.

한편 앨런(로빈 윌리엄스)은 리메모리 분야의 권위자예요. 그는 죽은 자의 조이칩에 기록된 평생의 기억 중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부분은 잘라내고 아름다운 과거만으로 기억을 편집해내는 데 발군이지요. 하지만 조이칩과 리메모리에 반대하는 히피들은 “앨런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면서 앨런의 신변을 위협합니다.

어느 날 앨런은 대기업의 임원이었던 변호사 베니스터의 리메모리 작업을 맡게 됩니다. 베니스터의 장례식을 앞두고 그의 기억을 샅샅이 검색해 보던 앨런은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합니다. 베니스터에겐 상습적으로 딸을 성추행했던 추악한 과거가 있었던 것이지요.

스스로를 ‘사람들의 죄를 사해 주는 존재’로 합리화해 온 앨런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앨런은 자신의 뇌에도 조이칩이 이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제목인 ‘파이널 컷’은 무슨 뜻일까요? ‘최종 편집본’을 말하는 영화 용어예요. 여기서는 앨런이 죽은 자의 기억 중 아름다운 과거만을 쏙쏙 골라 이어 붙여 만든 영상 최종본을 의미하겠죠.

앨런은 없었던 과거를 만들어낸 적이 없어요. 과거를 사실보다 더 과장되게 조작한 적도 없어요. 영상이나 음성을 기술적으로 변형시켜 거짓을 만들어낸 적도 없어요. 앨런이 한 일은 단지 여러 과거 중 어두운 내용을 버리고 긍정적인 부분만을 모아서 이어 붙인 것뿐이죠. 그렇다면 이런 앨런의 행위를 “진실을 왜곡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예. 그건 명백한 진실 왜곡이에요.

진실이란 건 ‘죽은 자의 조이칩 속에 남아있는 모든 과거’가 아니겠어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사람들에겐 대부분 아름답고 밝은 면과 추악하고 어두운 면이 공존하지요. 이렇게 기억 속 음지(陰地)와 양지(陽地)를 균형 있게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진솔하게 다가가려는 태도이지요.

하지만 앨런은 음지를 싹둑 잘라내어 버리고 기억의 양지만으로 과거를 재구성했어요. 앨런의 편집본은 비록 조이칩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사실(fact)’들로만 구성된 것이지만, 결코 ‘진실(Truth)’이라곤 볼 수 없지요. 여러 개의 사실 중에서 몇 가지 사실만을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진실은 유린당할 수 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로 들어 볼까요?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평가는 엇갈려요. ‘군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장기간 억압적 정치를 해온 독재자’로서의 박정희가 있는 반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주역’으로서의 박정희가 있지요. 만약 누군가가 박 전 대통령에 관한 영상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쳐요. 평소 ‘박정희는 나쁜 자야’라고 생각해온 연출자라면 경제개발과 관련한 그의 과거를 싹둑 잘라내어 버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겠죠? 또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야’라고 믿는 연출자라면 ‘쿠데타 집권’과 관련한 내용을 최소화한 채 그가 이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집중적으로 다룰 수도 있겠고요.

아, 어쩌면 인간은 진실을 외면하고픈 욕망을 뼛속에 품은 채 태어나는 건지도 몰라요.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고자 하는 이기적 본능 말이지요.

[3]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영화에는 앨런의 동료였다가 이젠 적이 되어버린 플레처(제임스 카비젤)란 인물이 등장해요. 그는 조이칩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두고 이렇게 지적해요.

“조이칩이 횡행한다면 사람들은 불안에 빠질 거야.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의 눈을 통해 늘 기록되고 있을지 모르니까. 상대의 눈에 기록되지 않을 권리는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래요. 조이칩은 인권이라고 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조이칩이 일반화된다고 가정해 볼까요? 길을 가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조이칩에는 나의 소소한 모습들이 전부다 기록돼 있지 않겠어요? 그건 지하철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조는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신나게 코딱지를 파내는 나의 모습일 수도 있지요. 나는 결코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메모리 칩에 기록된 나의 모습은 영상 재생을 통해 커다란 스크린에 적나라하게 ‘상영’될 수 있단 얘기죠.

결국 조이칩과 리메모리는 사생활과 초상권(肖像權) 침해라는 무시무시한 문제를 가져와요. 내가 지금 촬영되고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조차 스스로 누군가를 촬영해 기록하고 있단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건 더 심각한 사실이죠.

갓난아이 때 조이칩을 이식받은 사람들의 인권도 유린되긴 마찬가지에요. 평생 ‘지금 내가 보고 경험하는 모든 내용이 사후(死後) 다른 사람들에게 모조리 공개된다’는 공포심에 평생 짓눌려 살 거예요. 그러면 아름다운 여성에게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하고 ‘작업’ 한 번 맘 놓고 걸어보지 못할 거잖아요? 신체의 자유, 생각의 자유가 구속당하는 거죠.

만약 조이칩이 일반화된 시대가 온다면 우린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반갑게 악수하면서 이런 인사말을 던져야 할지도 몰라요.

“안녕하세요. 조이칩 하셨어요? 그럼 죄송하지만 저를 쳐다보지 말고 얘기해 주실래요?”

[4] 알쏭달쏭 퀴즈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 수첩’이 요즘 논란에 휩싸여 있어요. 결국 논란은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했지요. 검찰은 “취재과정에서 취재팀이 확보한 ‘원본 자료’를 모두 살펴보면 왜곡 보도를 했는지 아닌지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해요.

이 영화 ‘파이널 컷’의 주제의식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언론의 올바른 보도태도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게 오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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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