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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익명(匿名)

입력 | 2008-07-08 02:57:00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올리고 싶었을 뿐인데….” ‘지쳤습니다’란 제목으로 전경대원 전원이 시위진압 명령을 거부하기로 했다는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올려 얼마 전 구속된 대학 시간강사의 때늦은 후회다. 이처럼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의 윤리를 무장 해제시킬 정도로 익명성(匿名性)의 마력은 크다. 신분이 드러난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글을 서슴없이 띄울 수 있는 만용은 바로 이 익명성의 보호막이 제공해준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스콧 프레이저는 자동차 한 대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다른 한 대는 인적이 드문 길가에 세워둔 후 운전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꾸며놓고 관찰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붐비는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인적이 드문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는 26시간 만에 마지막 부품 하나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익명이 보장될 때 사람들은 이성과 체면을 던져버리고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짐을 보여준 실험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익명성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 언론자유가 없는 독재정권이나 종교의 권위가 짓누르는 사회에서 본래 이름을 숨기고 가짜 이름을 사용해 의견을 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문인인 이육사 김영랑 등도 가명이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문학사에 이름을 길이 남긴 조지 오웰, 마크 트웨인, 에밀 아자르는 모두 가명이고, 심지어 셰익스피어도 가명이란 설(說)이 있다. 많은 철학자가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 씨는 얼마 전 작가 이문열 씨와의 대담에서 “익명은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거짓정보와 상대 헐뜯기, 마녀사냥이 난무하는 오늘날 한국 인터넷문화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 군중 속에서 개인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누군지 상대방이 모른다’는 의식은 인터넷 공간을 아노미로 몰아넣고 있다. 누리꾼 스스로 도배글과 악플을 추방하고 책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을 함께 살리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