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7시간 가까이 끝날 줄 모르던 그들의 승부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신의 아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데러(27·스위스)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허무하게 네트에 걸렸다. 승리를 확정지은 ‘왼손 천재’ 라파엘 나달(22·스페인)은 코트에 벌떡 누워 두 팔을 뻗으며 감격스러워했다. 새로운 테니스 제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세계 2위 나달은 강력한 파워와 예리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6연패를 노리던 세계 1위 페데러를 3-2(6-4, 6-4, 6-7<5-7>, 6-7<8-10>, 9-7)로 눌렀다.
비로 예정보다 35분 늦은 현지 시간 오후 2시 35분 시작된 경기는 비로 두 차례 중단되면서 오후 9시 16분에야 끝이 났다. 경기 시간만 해도 131년 윔블던 역사상 가장 긴 4시간 48분이나 걸릴 만큼 치열했기에 역대 최고의 경기였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나달은 이로써 최근 2년 연속 페데러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친 한을 털어내며 윔블던 첫 정상에 섰다.
프랑스오픈에서만 4년 연속 우승하며 붙었던 ‘클레이코트 전문’이란 꼬리표도 뗐다. 통산 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컵과 함께 우승상금 75만 파운드(약 15억6000만 원)를 거머쥐었고 1980년 비욘 보리(스웨덴) 이후 28년 만에 한 해에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동시 석권했다.
1966년 마누엘 산타나 이후 스페인 선수로는 42년 만에 윔블던을 제패하면서 스페인 언론은 최근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08 우승에 이은 경사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지난달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나달에게 0-3으로 참패했던 페데러는 6년 가까이 패배를 모르며 65연승을 질주하던 자신의 텃밭인 잔디코트에서도 설욕에 실패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달이 자신의 약점인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하면서 고전한 페데러는 나달(27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52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1, 2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올린 나달은 3세트를 내준 뒤 4세트에서 5-2까지 앞서 경기를 매듭짓는 듯했다. 하지만 페데러에게 내리 4게임을 내준 뒤 타이브레이크에서 8-10으로 패했다. 마지막 5세트에 나달은 7-7에서 페데러의 서브게임을 따낸 뒤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켜 대미를 장식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