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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판 ‘러시안 룰렛’ 팬은 살맛난다

입력 | 2008-07-08 08:52:00


‘1박2일’… 15회 연장전… ‘피말리는 끝장승부’

프로야구 버전의 ‘러시안 룰렛’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걸릴지 예측불허다. 코치와 선수들은 물론 취재진과 방송중계팀까지 자기들이 안 걸렸다고 마냥 웃을 수 없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팬들은 둘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끝장승부가 즐거울 따름이다. 연장전이 길어질수록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이 방송계의 정설로 통한다.

○프로야구 사상 첫 16회 연장이 멀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달 29일 문학 한화-SK전과 6일 대구 KIA-삼성전은 15회에서 가까스로 끝났다.

SK는 15회말 투아웃에서 터진 김재현의 끝내기안타로 연장 16회 돌입을 막았다. KIA도 15회초 2사에서 나온 김주형의 안타로 결승점을 뽑았고, 15회말을 천신만고 끝에 막아냈다. 2차례의 15이닝 경기는 각각 5시간9분과 5시간15분이 소요됐다.

그러나 5시간15분이 KIA의 시즌 최장경기시간은 아니었다. 6월 12일 KIA는 목동 우리 히어로즈전에서 연장 14회 5시간22분짜리 ‘네버엔딩 스토리’를 썼다.

오후 6시30분에 시작한 경기는 우천중단까지 포함해 날을 넘겨서야 결말(히어로즈 2-1 승)을 봤다. 올 시즌 팀별 최장시간 경기를 살펴보면 SK는 5월 20일 히어로즈와의 제주원정에서 5시간13분(연장 11회·10-9 승), 롯데는 5월 14일 마산 삼성전에서 5시간2분(연장 12회·3-5 패), 두산은 5월 30일 잠실 LG전에서 4시간52분(연장 11회·8-3 승)을 기록했다.

LG는 5월 24일 잠실 KIA전에서 정규 9이닝만 5시간(11-13 패)을 했다.

○자꾸 오래하면 골병든다?

어째서 끝 모를 연장전이 출몰하는지에 대해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한국적 스몰볼’을 요인으로 꼽았다.

“일단 연장에 들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9회 안에 승부를 보려고 하다보니 대타요원도 이미 다 소진된 상태다. 미국 같으면 홈런으로 승부를 내겠지만 우리는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시킨다”고 분석했다. 또 투수 운용에 대해서도 “메이저리그는 연장에 들어가면 스윙맨이나 롱릴리프를 올리지만 한국은 마무리 투수의 이닝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선수 자원이 부족하기에 불가항력적인 고육책이기도 하다. 아울러 라커룸이나 라운지 시설이 열악해 선수들이 지치거나 허기져도 해결할 방편이 마땅찮은 점도 경기를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란 지적이다.

무제한 연장승부가 도입됐지만 12회 무승부 제도를 뒀던 작년에 비해 평균 소요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진 빠지는 마라톤 승부를 펼친 팀 대부분은 후유증을 노출했다. 재충전이 될 때까지 승률이 신통찮았다. 시즌 최장경기였던 KIA-히어로즈전(6월 12일)을 해설했던 허 위원은 “그 경기(목요일) 후 KIA 고참 선수들을 일요일에 다시 만났는데 얼굴이 핼쓱해져 있더라”고 전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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