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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바퀴-3열시트 떼놓고 달린다”

입력 | 2008-07-08 15:28:00


고유가시대 '백태'…할인점 대신 동네슈퍼로-에어컨은 '장식물'

주부 엄옥화(52)씨는 5월 초 경부터 대형 할인점이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엄 씨는 "할인점은 진열돼 있는 물건의 종류가 너무 많아 둘러 보다 보면 꼭 필요한 게 생각나게 된다"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사다 보면 당초 예산보다 더 쓰게 돼 후회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비록 집과 가깝기는 하지만 오가는 기름값도 이제는 무시 못 할 수준이어서 준비된 물건이 좀 적더라고 걸어갈 수 있는 동네 슈퍼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엄씨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그의 한달 장보기 비용은 약 10만 원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고유가 덕분에 절약하는 방법을 떠 올리다

최근 고유가 여파로 인한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해 생활비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 소비자들은 "수입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는데, 지출만 크게 늘어나 절약을 하지 않고서는 가계를 꾸려나가기 힘들다"고 한다.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상당수 출퇴근자들이 승용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부득이 하게 차를 갖고 다녀야 하는 운전자들은 유류비를 아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회사원 조모(40)씨는 최근 '5만㎞ 무교환 엔진오일'로 자신의 승용차 엔진오일을 바꿨다.

이번에 두 번째 이 같은 오일을 사용하는 조씨는 "이 오일 값이 일반 오일보다 3, 4배가량 비싸지만 10배가량 오래 탈 수 있어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5만㎞ 주행하는 동안 엔진의 에어크리너와 오일필터는 스스로 직접 교환한다는 조씨.

그는 "카센터에 맡기면 내야할 공임을 절약하기 위해 크게 어렵지 않은 정비는 스스로 하고 있다"며 "각 종 필터류는 물론이고 전화 플러그, 브레이크 패드, 배터리 등도 집에서 직접 교환한다"고 말했다.

●좌석, 스페어타이어도 빼 놓고(?)

회사원 김승범(37·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씨는 반드시 출근 시간대에만 주유소를 찾는다.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는 지하 기름 탱크 내부의 기온도 올라가 기름의 부피가 커 지기 때문에 똑 같이 30L를 넣어도 덜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

실제로 정유 업계 관계자들은 "주유기상에 표시되는 같은 용량이라도 온도차에 따라 1, 2% 가량 실제 용량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회사원 양승원(34·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씨는 다소 '공격적'으로 기름 값을 아낀다.

양씨는 자신의 7인승 승용차 'X트랙'(카렌스의 디젤 모델)의 짐칸에 있던 먼지떨이, 왁스, 목장갑 등 모든 짐을 빼내 집안 창고로 옮겨 두었다.

차 무게가 적게 나갈수록 연비가 높아지는 것은 상식.

하지만 양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3열 시트와 공구, 스페어타이어까지 모두 떼어 냈다.

"사람이 잘 앉지 않는 3열 시트는 그렇다 치고 공구와 스페어타이어까지 빼 내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양씨는 "차가 고장 나면 보험사의 긴급출동서비스를 요청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사실 타이어 펑크 등으로 차가 주행 중에 멈춰 서는 경우는 10년에 1, 2번꼴로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양씨는 "앞으로 기름값이 안정 되더라도 지금처럼 타이어를 빼 놓고 주행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타이어 점검을 받기 위해 타이어 전문점을 찾는 운전자의 상당수가 양씨와 같이 트렁크에 스페어타이어를 넣지 않고 주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타이어 전문 업체들은 양씨의 이 같은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타어어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페어타이어를 안 넣고 다니는 것은 구명정 없이 운항하는 타이타닉 호와 같다"며 "만약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에서 스페어타이어 없이 타이어에 펑크가 난다면 상상하지도 못할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실 에어컨은 '장식용'

주부 최 모(60·경기 성남시 분당구)씨 가족은 최근 날씨가 더워지자 '거실 출입'을 삼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날씨가 더워지면 스탠드형 거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TV를 봤지만, 최근 고유가 때문에 전기요금이 부담돼 방에 설치된 5평형 에어컨만 틀어 놓고 더위를 이기고 있는 것.

최씨는 "사실 그동안 불필요하게 에너지 소모 많은 에어컨을 켜 온 게 사실"이라며 "최근 고유가를 계기로 절약하는 방법에 대해 새삼 눈을 뜨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고유가가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의 지혜'를 짜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스페어타이어를 빼 놓고 다니는 등 무모한 수준만 아니면 고유가는 이처럼 불필요한 소비와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