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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원재]물가와 심리

입력 | 2008-07-09 03:00:00


베트남 경제가 뒤숭숭하더니 태국도 외환위기설(說)에 휩싸였다. 태국의 5월 소비자물가는 7.6%나 뛰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태국은 소비자들에게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 4월에 쌀값이 폭등해 사재기 파동이 일어나자 태국 정부는 부랴부랴 민심을 달랠 방책을 찾았다. 저소득층 현금쿠폰 제공, 주요 식료품 가격 통제 완화, 실질임금 인상 같은 선심성 정책이 물가 오름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한국도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슬금슬금 확산되고 있다. 5월 자장면 값은 작년 말보다 12.3%, 피자는 11.1% 올랐다. 자장면과 피자의 주재료인 밀가루 값이 36.7% 오른 탓이다. 하지만 쌀을 주재료로 쓰는 김밥이 16.1% 오른 대목에선 고개가 갸웃해진다. 쌀값은 1.3% 상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모든 메뉴 가격을 일률적으로 500원씩 인상했다는 분식점 주인은 “밥 종류는 국수보다 원가가 적게 올랐지만 앞으로 계속 오를 것 같아 이참에 한꺼번에 올렸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반영된 편승 인상이다.

▷인플레 기대심리란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리라고 예상하는 것을 뜻한다. 가격이 오를 요인이 없는 품목까지 덩달아 오르고,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물가 상승이 인플레 심리를 자극해 임금 인상→통화량 증가→물가 상승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 주요인은 인플레 기대심리, 국제 원자재 가격, 원-달러 환율 순이었다.

▷1, 2차 오일쇼크 때 물가상승률이 20%를 웃돌았던 것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가와의 싸움은 상당 부분 심리전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경제팀은 고유가와 경기 급락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1, 2차 오일쇼크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인플레 심리 차단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 억제 같은 정책을 통해 물가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얻어야만 물가 안정에 성공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