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이영무(55)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사퇴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또 이회택(62) 부회장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란 사실도 미리 인지했다. 처음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기술위원장을 지냈던 이 부회장을 또 앉히는 것을 한심한 ‘돌려막기 인사’로 봤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니 축구협회가 왜 이 부회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 내막은 이렇다.
한국축구는 올해 큰 변환기를 맞는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임기가 올해로 끝난다. 조만간 협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축구인들이 움직일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경기 내용을 두고 허정무 감독과 이영무 위원장이 비난의 도마에 올랐고 이 위원장의 교체 가능성도 대두됐다.
2008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컵 최종예선을 계속 치러야 하는 축구협회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축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나보다는 불협화음 없이 남은 임기를 이끌 사람이 누구일까에 더 무게를 두고 위원장 선정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거론됐지만 협회 임원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회택 카드’를 선택했다. 197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리던 이 부회장은 사실 행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투박한 ‘형님’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여야 축구인’을 막론하고 선후배 사이에서 고르게 덕망을 얻고 있다. 또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언제든 사심 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취임 인터뷰에서 “참 2005년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욕먹을 자리에 앉게 되는 군요”라며 “하지만 축구계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향후 역할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축구계는 회장 선거 때만 되면 늘 둘로 갈라졌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또 보이지 않는 선후배 간의 갈등도 심하다. 결국 축구협회는 ‘흔들리는 허정무호’에 따끔한 질책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축구계를 단합시켜 무리 없는 ‘정권 교체’를 위해 이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 부회장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