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 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5.0%로 동결했다. 연합뉴스
침체경기 악화 우려 기준금리 11개월째 동결
‘고물가 →기대인플레 →임금상승’ 악순환 경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앞으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와 함께 한은은 높은 물가상승률이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해 큰 폭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통위는 고유가의 영향으로 악화되는 실물 경제와 높은 물가 상승률 중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6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5.5%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한은 “최우선 임무는 물가 안정”
금통위는 10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5.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5.0%로 올라간 이후 11개월째 연속 동결됐다.
금융권에서는 △금리 인상이 자칫 침체된 경기를 더 짓누를 위험이 있고 △당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이미 잦은 시장개입으로 환율을 끌어내린 데다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커져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 때문에 발표 이전부터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따라서 관심은 물가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통화당국이 향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이날 밝힐 것인지에 있었다.
이에 대해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렇게 선택이 어려울 땐 한은이 본질적으로 부여받은 임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법은 한은의 최우선 임무를 ‘물가 안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요즘처럼 경기 악화와 물가 상승이 한꺼번에 닥쳤을 때는 경기가 불안하더라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인상 등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에서도 “한국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겠지만 수출 증가에 힘입어 감속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물가에 대해서는 “상당 기간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썼다.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 우려된다”
한은은 이날 물가상승이 자칫 노동계의 임금상승 요구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상승→기대 인플레이션 심리 확산→임금상승→추가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을 우려한 것이다.
이날 이 총재는 “물가상승에 따른 고통은 가급적 국민에게 고루 분산되고, 짧은 기간 안에 끝나야 하는데 혹시라도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면 고물가 기조가 정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 오일쇼크 때도 한국은 이런 악순환에 빠져 물가상승률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물가상승률 이상의 임금인상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공정위장 “물가상승기 담합 감시 강화”▼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물가가 오르는 시기에 가격 담합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감시와 제재 강화가 기업친화 정책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시장의 반칙 행위를 제재하는 것은 성공적인 시장 작동을 위한 시장친화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관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담합이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를 통해 경쟁이 촉진되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밝혔다.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