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이 된 노모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이 기각됐다.
서울 서부지법 민사21부(부장판사 김건수)는 폐 조직검사를 받던 중 저산소증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75·여) 씨의 자녀들이 “정신적 경제적 피해가 막대하다”며 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치료 중단 가처분신청에 대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된다”며 기각했다.
환자가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권리인 ‘존엄사’를 인정해 달라며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치료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무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며 “살인 및 자살방조를 처벌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할 수 없도록 하는 현행법의 취지를 고려했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주치의가 환자의 의식이 돌아올 확률을 8%라고 밝혀 회생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고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를 끼우지 말라’는 환자의 말은 가상에 의한 막연한 표현이므로 치료를 중단하라는 추정적 의사표시로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족 측 신현호 변호사는 기각 결정에 대해 “사형제를 유지하면서 생명권을 절대적 가치로 보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라며 “김 씨의 치료중단 의사와 관련해서도 유언장 등의 명시적 의사만 유효하다면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는 현행 제도가 무의미해진다”고 지적했다.
김 씨의 가족들은 가처분신청 외에도 노모의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며 서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29일 첫 변론이 예정돼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