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쏘는 우주인이요? 그냥 옆집아저씨 같던데”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9일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동아일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이 박사는 건강해보였고, 활기차고 우렁찬 목소리(한때 성악가 지망생이었단다)로 2시간 여 가까이 강의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강연에서는 이 박사가 우주인 선발에 지원해 첫 우주인이 되기까지와 전문적인 훈련과정, 소유즈 우주선에 탑승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보낸 10일 간의 여정,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탄도궤도 착륙, 그리고 스스로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머스럽게 풀어놓았다. 지면 관계상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우주인 훈련과정과 18가지 실험 등 ISS에서의 일정에 관한 내용은 제외하고, 가급적 이 박사의 개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강연 내용을 육성 그대로 재구성해 보았다.
○ 요즘 근황=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원 자격으로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어요. 다녀온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솔직히 실감이 잘 안 나요. 가끔은 “내가 정말 갔다 온 거 맞아?”할 정도니까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지켜봐 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전에는 아파도 ‘넌 아플 애가 아냐’하던 사람들도 요즘엔 멀쩡한 데도 ‘너 괜찮니?’하고 챙겨준다니까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우주인이 되다= 2006년 4월에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원했죠. 많이 와 봐야 만 명 정도겠지 했는데 3만6000명이나 왔더라구요. 친구들이 “우리나라에 너 같은 사이코가 3만6000명이나 있으니 외로워하지 마”라고 했죠. 언론에 나온 대로 처음엔 300명 안에 드는 게 목표였어요. 300명 안에 들면 제가 있던 KAIST 실험실에 맥주를 좍 돌린다고 했더니 선배·동료들이 ‘꼭 들어라’면서 열심히 응원해 주더라구요. 온갖 보도자료를 다 갖다 주면서. 그 분들 응원의 힘이 컸어요.
그런데 30명을 통과하니 분위기가 싹 달라지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공대생 실험실이란 곳이 1명이 빠지면 나머지가 N분의 1로 일을 나누어 떠맡아야 하거든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이쯤에서 떨어져주는 게 좋겠다’로 변하더군요, 하하!
30명 안에 들고부터는 병원에서 의료검사를 많이 받았어요. 잠 잘 수 있는 시간도 많고, 실험실보다 병실이 좋던데요? 이때 전 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문화된 서류로 인정받았죠. 제가 겉보기에도 건강해 보이지만 그렇게까지 건강할 줄은 몰랐거든요? 정말 괜찮은 후보들이었는데 본인들이 어쩔 수 없는 건강상의 문제로 탈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모님께 참 감사했어요. 이렇게 건강한 육신으로 낳아주셔서.
○ 당당함에 대하여= 몇몇 신문보도를 보니 제가 당당하다고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엔 ‘당당함’이라기보다는 ‘편안함’같아요. 제가 좀 그래요. 어디를 가나 3일 되면 30년 쯤 그곳에 산 사람처럼 보이죠. 스위스 파견 나갔을 때도 그랬고, 프랑스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교환학생 간 지 2주 만에 2∼3년 된 학생처럼 굴었죠. 러시아에서는 SBS 취재진분들이 그러시더라구요 “쟤는 완전히 여기 사는 애 같다”. 게다가 제가 목소리가 좀 크잖아요? 전 귓속말을 못해요. 귓속말이라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듣죠.
○ 러시아에서의 첫 느낌= 2007년 3월에 입소를 했죠. 그런데 기대하고 달리 가보니까 참 실망스럽더라구요. 금발의 여성 우주인 박사들이 즐비하고, 사방에 몸매가 멋진 우주인들이 우주복 입고 돌아다니고, 모든 문은 SF영화처럼 지그재그 문으로 되어 있고… 이런 걸 기대했는데 웬걸요? 문은 제대로 닫히는 게 하나도 없지, 여기저기 페인트는 다 벗겨져 있지, 방에서도 툭하면 가구가 넘어지지… 이런 나라에서 우주인을 어떻게 보내나 심란했죠. 그런데 훈련을 거듭하면서 러시아의 저력이 비로소 느껴지더군요. 이래서 러시아가 우주항공선진국이구나 싶었죠.
○ 드디어 진짜 우주인을 만나다= ‘우주인’하면 뭔가 샤프하고, 늘씬하고, 카리스마가 확 풍기고,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나올 것 같은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그냥 옆집 아저씨 느낌이에요. 어지간한 일에는 화도 잘 안 낼 것처럼 늘 ‘히히호호’하고. 게다가 나이는 다들 40대 중반 이후의 아저씨들이고, 키도 작고, 배는 불쑥. 저와 함께 간 분들은 그 중에서 정말 멋진 분들이었어요. 제가 운이 좋았죠. 하하!
우주에 간다니 이소연 박사의 은사가 조언했다.
“ ‘그래, 너 우주에 갔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우주에 갔다는 사실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우주공학·과학과 얽혀 있다. 당장 집에서만 찾아봐도 우주랑 관련된 물건들이 대여섯 가지는 훌쩍 넘는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36번째의 우주인 배출국이 다. 과거엔 바다를 지배한 자가 천하를 지배했지만, 이제 그 대상은 우주로 확대되었다. 세계 우주대국, 대한민국! 이소연과 그녀로 인한 이 땅의 수많은 ‘이소연 키드’들에게 즐거운 숙제가 생겼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관련기사]우주인, 이소연 “내 휴대전화 컬러링은 ‘은하철도 999’”
[관련기사]우주인 이소연 “김연아! 우리 떡볶이 한번 먹자”
[관련기사]이소연 “불타는 유리창 보며 죽을수도 있겠구나 생각”
[화보]한국의 딸 이소연 미래로 힘껏 날다
[화보]이소연, 그녀는 우리의 꿈을 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