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기기자
《동아일보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함께 세계 최고 경영 석학들의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및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분야의 권위자인 레이먼드 호턴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서울대는 글로벌 MBA 과정을 육성하기 위해 경영학 분야 별로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낸 외국인 교수 21명을 초청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인터뷰나 대담을 통해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석학들의 첨단 경영 기법, 이론, 통찰 등을 소개합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천재 경영 이론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기업 사회기여는 새 이익창출 수단
“기업의 사회책임투자는 희생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곧 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기업이 깨달아야 합니다. 월마트처럼 악명 높은 기업도 이런 현실을 깨닫고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사회책임투자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손꼽히는 레이먼드 호턴 컬럼비아대 교수가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다. 서울대 글로벌MBA 과정에서 강의하기 위해 2주간 내한한 호턴 교수는 “기업들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다가 장기적 이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구 온난화 대책은 또 다른 기회
―이윤 창출이 존재 이유인 기업에 왜 사회책임투자가 중요합니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은 사회책임투자를 희생, 양보와 같은 다소 거창한 이미지와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사회책임투자는 회사 이익과 사회 발전 중 하나만을 택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관점의 대표적 지지자로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들 수 있습니다. 프리드먼은 1971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통해 ‘기업의 활동 목적은 이윤 추구(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라고 말했습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질 때 이익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죠.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비즈니스맨들은 교수들보다 먼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이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곧 그 회사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기업들이 환경을 파괴해 더는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책임투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학계보다 재계가 사회책임투자의 중요성을 더 빨리 포착했다는 것이 다소 의외입니다. 사회책임투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기업은 어떤 기업입니까.
“아시다시피 월마트는 환경보호, 노조 및 하청업체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악덕 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월마트조차 최근 몇 년간 사업 방식을 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최근 매장의 모든 전구를 환경친화 전구로, 트럭은 기름 소비가 적은 것으로 바꿨습니다. 다른 기업도 아닌 월마트가 이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책임투자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에코-이매지네이션(Eco-imagination·친환경적 상상력) 전략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제 환경 규제를 지키면서도 에너지를 대폭 절약한 풍력 터빈, 고효율 엔진, 고연비 기관차 등을 개발해 많은 매출을 올렸죠.
GE나 월마트에서는 이제 사회책임투자 부문이 홍보나 마케팅 부서보다 우위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의 물결이 곧 한국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역시 기업들의 이윤창출 기회가 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사회책임투자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구온난화 관련 사업 안에 있습니다. 대기 오염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 지구촌의 환경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 기회를 먼저 포착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로 거둔 성공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통해 기업은 매출을 증가시키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환경친화기업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까지 얻었죠.”
―불과 15∼20년 전만 해도 세계 기업 중 사회책임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은 거의 없었는데요. 최근 들어 기업이 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정부기구(NGO)의 기업 감시 능력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5∼20년 전에는 어떤 기업이 잘못을 저질러도 빠져나가기가 쉬웠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투명해지고 NGO, 주주 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업은 변화를 요구받았습니다. 엔론 사건을 보죠. 엔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피했을 뿐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 또한 비윤리적, 비합법적이었습니다. 엔론의 실패는 엔론 직원과 주주뿐 아니라 엔론 본사가 위치한 휴스턴 지역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기업 윤리와 사회책임투자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회책임투자가 주주가치와 기업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논리는 앞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겁니다. 다만 이때 이익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익보다 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얻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기별 이익이 아니라 5년 후 이익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밀턴 프리드먼도 생각 바꿨을 것
―사회책임투자가 이익창출의 또 다른 수단이라면 이 역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회책임투자를 꺼리는 기업들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익창출 수단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지난 30년간 사회책임투자를 강의하면서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서울대 강의를 시작한 첫날 학생들에게 직장 상사가 옳지 못한 일을 시켰을 때 느꼈던 경험에 관해 에세이를 쓰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은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나중에 이를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윤리적 딜레마를 겪을 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중국어로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카우타우’(Kowtow·아첨하다라는 뜻을 가진 고두·叩頭 라는 중국어의 미국식 표현)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직장을 그만두는 겁니다. 마지막 방법은 가장 어렵지만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상사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세 방법 중 카우타우가 가장 쉽지만 자신의 일부를 회사에 헌납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포기하기 시작하면 포기해야 할 양은 점점 늘어납니다. 결국 자신의 전체를 회사에 넘겨줘야 하죠. 이것이 바로 자살 행위(slippery slope)입니다.”
―프리드먼은 왜 기업의 사회책임투자보다 이윤 추구를 강조했을까요. 프리드먼이 살아 있다면 교수님 생각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프리드먼은 극단적 보수주의자(ultra conservative)였고 정부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물론 그도 법을 어기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도덕적 윤리에 얽매이기보다는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프리드먼이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자신의 견해를 바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에너지 부족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잘 파악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가 월마트의 변화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월마트의 전략은 자본 비용을 줄여 이익을 늘리는 프리드먼 식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먼드 호턴 교수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전문박사(JD) 학위를 취득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30년 넘게 컬럼비아대에 재직하며 윤리 경영과 기업의 사회책임투자 부문을 가르치고 있다. 뉴욕 시 임시 재정위원회 상임이사로도 활약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