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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중도 행보’ 변신인가 위장인가

입력 | 2008-07-12 03:00:00


“유연한 좌우 진동” vs “무당파 포섭 전략”뚜렷한 이념보다 사안별로 다른 판단

“집권땐 이라크 미군 철수” 공언도 번복

한반도 관련된 부정적 공약 바뀔수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선두를 달리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이념적 좌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오바마 후보는 지난해까지도 미 상원의원 중 문자 그대로 ‘첫 번째로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5월 초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그는 급속히 중도로 좌표 이동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놓고 ‘중도파를 잡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란 분석과 ‘원래 오바마 후보는 이념지향적이라기보다 유연한 성향을 지닌 정치인’이란 분석이 맞서고 있다. 》

본보는 대럴 웨스트 브루킹스연구소 부설 정부학연구소 소장, 피터 웨너 ‘에틱스 앤드 퍼블릭 폴리시센터(EPPC)’ 선임연구원, 윌리엄 걸스턴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스티븐 코스텔로 프로글로벌 컨설팅 대표 등 미국 정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1991년부터 현재까지 오바마 후보의 투표 기록 등을 조회해 그의 이념적 성향을 분석했다.

▽오바마 후보는 변했나=중동-이스라엘 갈등, 총기소유, 도청금지, 이라크 철군 등 최근 잇따르는 현안들에 대해 오바마 후보는 뚜렷하게 중도지향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최근 “총기소유 금지는 위헌”이란 결정을 내리자 그는 이를 지지했다. 그는 2005년에는 금지 대상 총포류와 탄약을 확대하고 총기류 제조자와 판매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에 적극 찬성했다.

오바마 후보는 지난해엔 정부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도청 권한 연장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으나 최근엔 도청 관련 통신회사들의 책임을 면책하는 법안을 지지했다.

이라크 철군 문제는 “집권하면 이라크 미군을 16개월 안에 철수하겠다”고 공언했던 태도를 바꿔 “(이라크 미군을) 가다듬겠다(refine)”고 말했다.

▽변신인가 위장인가=웨스트 연구소장은 “과거 그가 보여준 투표성향을 보면 의심할 바 없는 ‘리버럴’이지만 대선을 의식해 일반 대중에게 좀 더 온건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함재봉 수석정치학자도 “전통 보수주의자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무당파층의 지지까지 확고히 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웨너 EPPC 선임연구원은 “고집불통 리버럴로 낙인찍히기보다는 차라리 ‘말 바꾸기’를 한다는 공격을 받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시각과 달리 오바마 후보 자체가 다문화적 성장 배경 속에서 자라나 미국의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만큼 원래 이념에 매몰되지 않는 성향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념지향성이 강한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X세대(1960년대 초반∼1980년대 후반 출생 세대)의 선두주자여서 이념의 잣대로 사안을 보기보다는 사안별로 유연한 판단을 한다는 설명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지낸 걸스턴 연구위원은 “오바마 후보가 지역에서 했던 풀뿌리 조직운동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는 만큼 그의 이념적 성향은 기본적으로 중도적일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과거 투표기록과 발언, 자서전을 보면 사형, 낙태 등의 이슈에 대한 그의 과거 견해는 온건 중도에 가까웠다.

최근엔 대법원이 판결에서 어린이 성폭행범에 대한 사형집행을 중단시키자 오바마 후보가 이를 비판하면서 ‘변신’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는 저서 ‘희망의 담대함’에서 “일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사형은 정당하다”고 분명히 한 바 있다.

낙태에 대해서도 그는 “산모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해서 만삭의 상태에서 낙태시키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일리노이 주의원 시절부터 일관된 소신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오바마 후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시행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골수 보호무역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스티븐 코스텔로 대표는 “오바마 후보의 변화는 그가 정확한 정보에 따라 유연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가 당선되면 지금까지 밝혀온 한반도와 관련해 내놓은 부정적 공약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