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선 여울물이 흘러갑니다. 개울가에는 녹음 속에서 피어나는 들꽃 냄새가 코끝에 찡합니다. 작은 언덕 위에는 사철나무, 산수유, 단풍나무, 조팝나무와 같은 관목이 병사처럼 도열하여 푸른 잎을 푸짐하게 피우고 있었습니다.
여름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 어느 날 맑은 오후, 개울가를 날아가던 꿀벌과 잠자리가 공중에서 서로 마주쳤습니다. 잠자리가 먼저 꿀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꿀벌은 관목 숲 뒤쪽에 있는 벌통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놀란 잠자리가 말합니다. 지금 당장 다른 꿀벌 한 마리가 조팝나무에 친 거미줄에 걸려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목 숲에는 그 거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마리의 거미가 곤충을 포식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꿀벌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잠깐이라도 표지목에 내려앉아 날개를 쉬며 대책을 강구해야겠지만 처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꿀벌이 표지목에 내려앉는다면 다리에 잔뜩 묻혀 놓은 꽃가루가 모두 떨어져 나가 그날 하루의 일과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날 것입니다. 잠자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잠자리는 휴식을 위해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하더라도 날개를 접을 수 없기 때문에 휴식이란 하나마나입니다.
거미는 아주 영리하면서도 포악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을 지을 나무를 찾아낸 다음, 나뭇가지 끝에 오직 한 가닥의 거미줄을 늘어뜨려 놓습니다. 아래로 늘어뜨려진 거미줄은 바람에 흔들리다가 또 다른 나뭇가지에 걸려 달라붙게 되지요. 그때를 기다리던 거미는 첫 번째 실에 의지하여 느슨한 줄을 친 다음, 줄을 아래쪽에 있는 나뭇가지로 끌어당겨 붙입니다.
줄이 완성된 시점에서부터 거미의 집짓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거미가 가진 놀라운 지혜는 기다릴 줄 안다는 점입니다. 쥐 죽은 듯이 매복하고 언제까지나 끈질기게 기다립니다. 거미는 그집 한 채로도 수십 마리나 되는 곤충의 체액을 빨아 살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곤경에 몰린 잠자리와 꿀벌도 포악한 거미에 못지않은 지혜를 터득하게 됐습니다. 거미가 진을 치는 공간은 관목 숲이 있는 곳이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로써 잠자리는 관목 숲보다 더 높고 넓은 공간인 고공비행을 선택하기로 했고, 꿀벌은 관목보다 더 낮은 곳에 사는 야생화 사이로 생긴 공간을 날아다니며 작업한다면 거미집에 걸려들 염려가 없음을 생각했습니다. 늦은 여름날 고공비행을 하는 잠자리와 꽃에서 꽃으로만 옮겨 다니며 저공비행을 하는 꿀벌의 생리는 거미가 획책하는 섬뜩한 포획의 교훈에서 얻어낸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