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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창혁]대통령중심제 OUT!

입력 | 2008-07-13 20:32:00


광화문에 사는 죄로 두 달 동안이나 촛불에 떠밀려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괴담에 사로잡혀 연일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그놈의 촛불 민심’에 진저리가 나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 촛불들이 내겐 미국산 쇠고기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아니 대한민국의 태생에 대한 저주처럼 보였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0%나 된다는 고학력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초현실적인 광경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2차 대전 당시 탄저균 사탕을 만들어 중국 어린이들에게 먹였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제 나라 국민을 죽이기 위해 ‘전염병’을 수입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어디서 그런 증오가 나오는 것인지….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민심에 대한 절망이 깊어지면서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염증도 깊어졌다. 제 손으로 뽑아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시도 때도 없이 ‘아웃(OUT)’을 외치는 국민에겐 맞지 않는 옷이라는 회의가 깊어졌다. 방송국 PD들의 그럴듯한 ‘주술(呪術)’에 현혹돼 헌법 제1조까지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하는 ‘성마른 주권욕(主權慾)’의 소유자들에겐 더욱 맞지 않는 옷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 대통령선거는 선거일 당일 하루 기분 삼아 한번 해보는 ‘모의 투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1987년 이후 단 한 사람도 성한 대통령이 없었다. ‘성공한 대통령’은 대통령학 교재에나 등장하는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고 나서야 비교적 안정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재임 기간 그나마 안정을 누렸던 사람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양김 정권의 안정은 두 사람의 특별한 카리스마와 특별한 지역기반 덕분이었지, 대통령중심제라는 제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지역기반조차 변변치 않았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중심제의 위기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못해 먹겠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촛불이 노무현 정권을 탄핵에서 구해냈지만, 국가 권력구조의 안위(安危)를 촛불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게 2004년 3월, 취임 후 1년이 막 지난 때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100일도 안 돼 ‘길거리 탄핵’의 표적이 됐다.

대통령중심제의 장점은 강력한 리더십과 체제의 안정성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사에서 그 장점이 현실화한 때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때뿐이었다. 이젠 권력구조와 정부 형태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식품의 안전성 문제로 국가 권력구조 자체가 흔들린다는 건 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증거라고 봐야 한다.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이정복 서울대 교수는 저서 ‘한국정치의 이해와 분석’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잘되는 경우는 대통령중심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못되는 경우에 어떤 정부 형태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공론화할 때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