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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7월 11일 보여준 게 李정부 본질인가

입력 | 2008-07-14 22:47:00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5년’의 기록과 전산정보시스템을 인수(引受)하는데 실패한 채 임기를 시작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사람들은 ‘노 홀리데이 얼리버드’라고 자랑했지만 국정운영의 가장 중요한 기초인프라 확보부터 실패한 것이다. 설혹 노 전 대통령이 악의적인 훼방을 놓았다 하더라도, 이와는 별개로 ‘이명박 인수위’가 무능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대통령직 인수의 필수사항을 놓치고 영어몰입교육 같은 이슈나 꺼낸 것은 일의 순서와 본말(本末)을 분간하지 못한 것이니 이야말로 무능 아닌가. 그저 요란스럽게 바쁜 것과 진짜로 깨어 있는 것은 다르다.

어느 정부나 말수가 적어 성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전(前) 정부가 보여줬듯이 오히려 말이 너무 많아 탈이다. 이 정부도 국민을 위해 하겠다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이 대통령이 11일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도 다짐으로 차 있다. 그러나 이런 약속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줄어들고 있다. 말에 상응하는 구체적 치적은 적고, 오히려 말과 딴판인 결과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정 실전(實戰)에서 실패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이 대통령은 상당부분 스스로 인정했듯이 특히 인사(人事)에서 많은 실패를 했다. 정부 인사는 국정 수행의 총체적 능력을 좌우한다. 그 이전에 인사로 인해 정부의 이미지가 고착되기 쉽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딱지 하나의 파괴력이 얼마나 컸던지는 정부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절감했을 것이다. 이 딱지가 초기 MB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여부를 갈라놓고 말았다.

국민 사살된 날 북에 秋波던졌다

531만 표차라는 대선 압승의 위력보다는 패배세력의 저항력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과 원려(遠慮)가 이 대통령의 초기 인사에 반영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첫 인사에 실패하다 보니 이젠 ‘강부자 고소영’ 아닌 사람 찾는 일이 인사원칙처럼 돼버렸다. 이중으로 적재적소(適材適所) 인사와 멀어졌다.

때로는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 반대세력과 설전(舌戰)도 벌여야 할 텐데, 이 정부에는 그런 파이터 한두 사람 찾아보기도 힘들다. 공권력이 초중학생들한테도 야유의 대상이 되는 판국에 반정부세력은 “공안(公安) 탄압 중단하라”고 외친다. 이렇게 정치적 정략적 덮어씌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데도 누구 하나 작심하고 반론하는 사람이 정부에 없다. 이 또한 한 겹 벗겨보면 인사 실패와 무관하지 않다.

대미 쇠고기협상은 이 정부 초반 실패의 결정판이다. 한미동맹 복원,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여건조성, 이를 위한 정상 간 신뢰구축, 다 중요하다. 그리고 바른 목표 설정이다. 하지만 4월 18일 이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에 쇠고기협상을 ‘졸속 양보 타결’한 것은 국민 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결과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한미 정상회담 직전의 쇠고기협상 타결이 ‘멋진 타이밍’이라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무릇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 상식이다. 그 시점에 미국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며 합의해준 것은 무신경했다. 광우병 괴담은 대국민 사기(詐欺)지만 이를 촉발한 것은 정부다. 청와대 국정원 외교부 등은 민정(民情)에 지극히 어두웠다. 정운천 장관은 4월 17일 청와대 측의 ‘합의 압력’에 심하게 반발했지만 그조차도 농림부 장관의 눈으로만 사태를 봤다.

지난 금요일 대통령과 관계당국자들은 또 한번 심각한 판단 실패를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군이 금강산 관광길의 우리 국민을 사살한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도 국회 연설에서 ‘대북 전면대화 제의’를 예정대로 했다. 청와대는 그 후에도 “이 사건과 대통령 국회 연설은 별개”라고 해명했다.

‘섬기는 정부’ 실체에 의심 자초

앞으로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뒷전에선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며 듣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북이 남북 간 합의서마저 위반하고 우리 국민을 살해했는데 이것과 남북문제는 별개라니, 국민을 섬긴다는 정부가 누구를 섬기려는 것인지 의심을 자초했다.

이 정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햇볕정책에 잘못 길들여진 북의 버릇을 반드시 고치고 말겠다는 듯이 언행을 했다. 하지만 5개월도 못 버티고 거꾸로 북에 추파를 던졌다. 그것도 금강산에서 시신이 돌아온 시간에, 국민과 국회의원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것이 이 정부의 본질이라면 정권교체를 이루어준 다수 국민이 생각을 바꿀 것이다. 이미 그 단계는 시작됐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