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유일한 여성 구청장인 김영순 송파구청장이 요즘 자전거 타는 재미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그 자전거를 보며 배꼽을 잡는다. 아이들 자전거에서나 볼 수 있는 보조바퀴 2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전거특별구의 구청장으로서 자전거를 타는 모범을 보이고 싶은데 환갑 나이에 도저히 자전거를 배울 수가 없어 네발 자전거를 탄다”고 털어놓았다.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한 물건
하지만 필자는 김 구청장에게 대놓고 웃을 처지가 못 된다. 자전거를 못 타기 때문이다. 최근 보조바퀴를 뗀 아들 녀석이 엄마를 깔봐도 김 구청장처럼 네발 자전거를 탈 용기는 없다. 자전거 타는 요령을 배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슬쩍슬쩍 물어보면 “그냥 몇 번 넘어지면 된다”고 한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가장 황당한 요령은 이랬다. ‘한 발로 페달을 밟고요. 다음에 다른 발로 페달을 밟으면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건강이니 환경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동료 기자였던 홍은택의 저서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을 읽고 나서였다. 그는 버지니아 주에서 오리건 주까지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페달을 밟는 것은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바꾸는 혁명 같은 행위다.’ 그 ‘혁명’ 한번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운동신경 둔한 40대 아줌마라는 현실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기를 주는 소식도 없지 않다. 자동차 중독이 심각한 미국에서도 중년층 사이에 자전거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60대에 자전거를 처음 배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는 내게 수백만 달러를 주신 셈이다.” 자전거를 배우기만 한다면 나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기름값이 이토록 뛰는데도 유류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유가가 사상 최고의 폭등세를 보인 1∼5월 국내 휘발유 소비는 소폭이지만 오히려 늘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석유 중독’이라고 인정한 미국조차도 최근 석유 소비량이 줄었을 정도로 고유가 위기감이 높다. 기업이 주 4일 근무를 시행하고 경찰은 도보순찰을 하며 학생들은 멀리 통학해야 하는 대학을 자퇴한다는 소식이다.
그런 와중에 국내에서 자전거 출퇴근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비싼 기름 대신 자신의 뱃살이 동력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 좋다.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2%만 돼도 환경 및 에너지 편익은 연간 1조500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고유가시대에 이만한 효자가 없다. 자전거가 콘돔, 빨랫줄과 함께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한 물건들’에 선정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삶의 방식 바꿔야 고유가 넘는다
자전거 제조공장은 요즘 밤을 새워도 물건을 대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정비하고 무인 자전거대여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전거 타기의 의미는 단순한 레저용 스포츠나 대체 교통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자전거 타기는 속도와 경쟁의 삶에서 여유와 협력의 삶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건강증진과 환경보호는 거기에서 얻어지는 덤이다.
기름값이 하늘을 뚫을 듯이 오르면서 정부는 관용차 홀짝제 등 강도 높은 고유가 대책 시행에 들어갔다. 공무원부터 작은 차를 타며 솔선수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전체 에너지의 96.3%를 소비하는 민간부문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는 단순히 에너지효율 증진과 절약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 허리띠 졸라매기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영구적 변화다. 그걸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승용차를 타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버스가 더 빠르고 더 편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여기다 나 같은 아줌마를 위해 자전거 무료강습을 해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