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미국 뉴멕시코 주 모래사막 한복판에서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황금빛, 진홍빛, 보랏빛이 뒤섞인 섬광은 일순간 주변 산봉우리와 산마루, 계곡 깊숙이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비췄다.
암호명 ‘트리니티’로 불린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작렬하는 순간이었다.
16km 떨어진 관측소에 있던 과학자들은 핵폭발이 연출한 황홀한 장관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리고 40여 초 뒤,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폭음이 귀청을 때린 뒤 12km 상공까지 솟아오르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면서 이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이 극비 프로젝트를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는 소름끼치는 만족감과 함께 다가올 참극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문득 고대 힌두교의 경전에 등장하는 시구를 떠올렸다.
“태양 1000개의 광휘가 하늘로 솟구친다면 그것은 전능한 존재의 광채와 같으리니…. 나는 죽음의 신, 세상의 파괴자다.”
인근 수백 km까지 느껴진 충격파 때문에 군 당국에는 문의가 쏟아졌다. 실험장 관할 공군기지는 50단어짜리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상당량의 고폭탄과 조명탄을 저장해둔 화약창고가 폭발했다. 사상자는 없었다.’
실험이 성공한 직후 샌프란시스코에 대기하고 있던 해군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호는 서태평양의 비행기지 티니언 섬으로 출발했다. 인디애나폴리스호에는 20여 일 뒤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져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원자폭탄이 실려 있었다.
실험 성공 소식은 곧바로 독일 포츠담 근교 바벨스베르크에 머물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도 전달됐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을 앞둔 트루먼은 뛸 듯이 기뻐했다. 트루먼은 다음 날 회담에서 매우 강경한 자세로 스탈린을 몰아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트루먼은 원자폭탄이 소련을 상대하는 ‘으뜸패’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었다. ‘소련도 조만간 원자폭탄을 갖게 될 것’이라는 오펜하이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원자폭탄 독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련 첩보기관은 미국의 원폭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독일 출신 과학자를 포섭해 핵심기술을 빼냈고, 소련은 1949년 8월 29일 마침내 첫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냉전시대 핵무기 군비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