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라피스트 김연수씨.
푸드테라피스트 김연수씨.
"나이 40이 되면 직장을 그만 두고 내 일을 찾겠다."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한 번 쯤 해 봤을 법한 얘기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 '내 일'을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 직장인들은 회사 일을 '내 일'로 만들어 오늘도 열심히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구내식당에 줄을 서는데….
벌써 3년째, 나이 40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보란 듯이 프리랜서로 성공해 관심을 끄는 사람이 있다.
최근 '푸드 테라피스트'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연수(43) 씨.
그는 1988년 세계일보 공채 1기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5년부터 문화일보로 자리를 옮겨 10년간 의학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은 각종 의학 상식을 그에게 물었다. 그 중 특히 많았던 질문이 "어떤 질환에 무슨 음식이 좋으냐"는 것이었다.
각종 영양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의사들은 음식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했고, 요리 전문가들은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 영상 취재 : 나성엽 기자
"나이 40에는 내 일을 하겠다"며 입사 때부터 벼르던 김 씨는 2003, 2004년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음식의 맛과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푸드 테라피'에 관심을 갖고 푸드 테라피스트가 되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10년간 의학을 담당하면서 얻은 의학 지식과 취미인 요리를 접목시키기로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신문사에 있을 때야 '기자'라고 알아줬지만, '푸드 테라피스트'는 인정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0년간 의학 전문 기자 활동을 하며 얻은 지식에 깊이를 더하고 음식을 공부해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5㎏ 가볍게 5살 젊게 5시간 활기차게' 등의 책을 내 지명도를 높였다.
특히 '5㎏…'는 다이어트, 노화방지, 스트레스 등과 음식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이 책 내용대로 해 봤더니 효과가 있더라"라는 입소문이 퍼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먹거리 관련 사고가 잇따르는데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품회사 등 기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으며, 딤채 김치냉장고 홍보대사로 김치냉장고 활용법에 대한 강연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맥심 커피 광고모델로도 활동 중. 농심에서는 신제품 개발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KBS2TV '행복한 오후'에서 '생생 동의보감 건강밥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각종 기업체 강연과 잡지 칼럼 원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blog.naver.com/white_55)는 그의 저서 못지않게 인터넷에서 음식의 맛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로 인기가 높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최근 한 기업체 임원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푸드 테라피스트'라고 적힌 명함을 받아든 임원은 조용히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비서에게 '푸드 테라피가 뭔지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비서는 인터넷을 뒤져 '김연수 라는 사람이 만든 개념으로 김 씨는 국내 1호 푸드테라피스트로 활동 중'이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임원은 웃으면서 그 문자 메시지를 김 씨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과거에도 국내에 푸드 테라피스트는 있었지만 김 씨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에 사실상 김 씨가 '국내 1호'로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
그는 프리랜서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푸드 테라피스트'가 인기 직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후진 양성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있다.
보건학,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요리연구가의 자질을 갖춘, 자신과 같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가에 특강 형식의 단기 과정을 마련해 운영하는 게 그의 장기적인 목표.
"'푸드 테라피스트'들이 늘어나 각 분야에서 활동한다면 최근 잇따르고 있는 식품 관련 사고가 줄어들고 과자 등 제품의 영양가도 높아질 것"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요? 직업은 바꿔도 하는 일은 바꾸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일이 힘들고 고돼 무의미한 것 같지만, 결국 누구나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니까요."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