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대학 시절 대만에서 유학 온 한 여대생과 대화하다 기자가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 그 여학생이 펄쩍 뛰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내가 김일성을 찬양하면 좋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한국이나 대만이나 반공(反共)이 국시(國是)라고 교육받던 시절이었다.
국공 내전에서 패해 1949년 대만으로 물러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이듬해 일어난 6·25전쟁으로 정권의 안정을 굳힐 수 있는 커다란 계기를 맞았다. 대만이 한국과 함께 동북아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하면서 미국은 다시 장 총통을 지원했다. 당시 북한 공산군이 남침했다는 소식이 전하지자 대만에서는 반공을 명분으로 지원병을 파견하자는 말도 나왔다.
한국과 대만은 상당 기간 ‘반공 이데올로기 동창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떠오르는 4룡(龍)’으로 불리며 ‘개발도상국 우등 동급생’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남북한과 양안(중국 대륙과 대만)의 모습은 각각 어떤가.
한쪽에서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 중이지만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직항기가 뜨고 교류 활성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작 사정이 절박한 남북한은 느린 대화 속도로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반면에 이미 많은 진전이 이뤄진 양안은 한층 더 속도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양안 간에는 올해 6월 13일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져 1949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7월 4일부터 항공기 운항이 시작됐다. 물론 아직 한계도 있다. 상하이(上海)∼타이베이(臺北) 구간의 경우 직항하면 393km에 비행시간이 1시간 9분이지만 홍콩 ‘비행정보구역’을 경유하다 보니 1084km를 비행해 2시간 42분이 걸리고 비용도 1.3∼1.5배 올라간다고 한다.
중국인의 대만 여행도 제한이 많다. 인원은 하루 3000명을 넘지 못하고 각 여행단은 10인 이상 40인 이하로 제한되며 입국일을 포함해 10일 이상 머물지 못하고 개인행동도 할 수 없다. 그래도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홍콩 포함)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해 이미 중국이 대만의 수출 1위 대상국이다.
그러나 남북한은 어떤가.
한반도에는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1000만 명이다. 아직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해 많은 주민이 아사하거나 고향을 등지는 비극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북한이 한국과 대륙을 잇는 길목을 막고 있어 빚어지는 ‘분단의 경제적 비용’도 계산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크다.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과 한국 일본 등이 육지로 연결되면서 동북아에서 새로운 경제적 활력을 만들어 갈 커다란 기회가 북한이라는 변수에 의해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은 장기적으로 대만까지 포함한 중화권의 역량을 키워 미국과 세계를 나눠 경영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며 “이들은 최근의 양안관계 개선을 보며 중화민족의 새로운 저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안에 비하면 남북한이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한층 더 절박하다. 이런 때 지지부진한 6자회담 소식이나 금강산에서 들려온 충격적인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 소식을 들으니 한층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