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송사 PD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른다. PD에도 여러 직종이 있어 드라마, 연예, 시사보도 등으로 나뉜다는 정도 외에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24년 동안 일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기사만 읽어도 기자가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의 취재를 했는지, 어느 대목에서 고심을 했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토씨 하나, 조사 하나의 선택에 따라 뉘앙스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안다. 따라서 PD들이 만드는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에 대해선 평가할 수 없지만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기자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PD수첩 무더기 ‘실수’에도 변명 일관
15일 밤 MBC TV의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편은 수준 이하였다. PD수첩은 방송 첫머리에 몇 가지 ‘번역 실수’를 인정했다. 맨 마지막엔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고 한 것에 대해 “부정확한 보도였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4월 29일 방영한 문제의 프로그램에 대한 해명으로 일관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PD수첩이 잘못을 인정한 부분이다. ‘실수’였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기에는 프로그램 전체의 방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초년병 시절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훈련을 혹독히 받는다. 그래도 간혹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웬만큼 훈련된 기자라면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 하물며 한 건의 보도에서 몇 개의 실수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PD수첩은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수도 있는’을 ‘걸렸던’으로, ‘걸렸다고 의심합니다’를 ‘걸렸다고 합니다’로, ‘뇌 질환 관련 사망자 조사’를 ‘vCJD(인간광우병) 사망자 조사’로 잘못 번역했다.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 동영상을 보면서 ‘광우병 소’라고 지칭한 것은 생방송 중 ‘말실수’였단다.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번역 실수’와 ‘말실수’가 무더기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기자적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광우병 발병 확률 94%’ 보도에 대해 “부정확했다”고 인정한 대목을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에 살짝 끼워 넣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94%가 광우병에 걸리는 것처럼 받아들여진 결정적인 부분을, 그래서 놀란 국민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부분을 ‘부정확했다’는 애매모호한 한 마디로 넘길 수 있는 것인지 사과에 진정성이 담겼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영상과 자막, 멘트를 교묘히 배치해 시청자를 오도한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자신들이 인정한 이런 몇 가지 ‘실수’ 사례만으로도 PD수첩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어야 정상이다. 기자라면 이 정도 오류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파면감이고 스스로 사표를 내야 할 것이다.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야말로 보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PD수첩은 결정적 잘못을 실수라고 얼버무리면서 오히려 국민의 전파를 이용해 해명방송을 했다. 그러면서 본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을 비난해 동조세력을 규합하려 했다. 이런 비양심적 풍토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전달은 보도의 생명이다
선량한 일반 시청자들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실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PD수첩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런 의견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한 건의 기사, 또는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중대한 실수가 무더기로 발생하는 일은 보도를 업으로 하는 프로세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도적 실수’라는 의혹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솔직히 PD들은 기자와는 훈련과정이나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 아닌지 선의로 해석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보도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미리 결론을 내고 거기에 부합하는 사실을 취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수집한 뒤 해석해 결론을 내는 것이다. 내용을 구성하는 사실들에 오류가 있으면 보도 전체의 신뢰는 당연히 무너진다. 기본 전제가 잘못됐는데 제작 의도는 순수했다고 강변한다면? 아마추어적 행태일 뿐이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