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식 대성쎌틱 대표(가운데) 등 대성쎌틱 임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성쎌틱은 일본 온수기 업체가 장악한 미국 시장에 최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콘덴싱 온수기를 수출했다. 이훈구 기자
高 에너지효율 제품 日업체 아성뚫고 진입 성공
2010년까지 年 5만대 수출… 점유율 10%대 목표
《미국 가정집은 온수기 수요가 유난히 많다. 대체로 보일러가 아닌 온풍으로 난방을 하는 가옥 구조상 온수기를 따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 온수기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꽉 잡고 있다. 미국에서 연간 판매되는 약 1000만 대의 온수기 가운데 90%가 린나이, 노리츠, 다카키, 팔로마 등 일본의 4개 기업 제품이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미국 온수기 시장에 국내 토종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인공은 보일러업체인 대성쎌틱. 이 회사는 5년여의 준비 끝에 최근 미국에 온수기 2000여 대를 수출키로 하고 선적을 마쳤다.》
대성쎌틱이 온수기 수출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4년부터다. 초고유가 시대가 다가오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이 뜰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1988년부터 보일러 설계 경험을 쌓은 베테랑 엔지니어인 고봉식 대성쎌틱 대표가 직접 제품 개발을 이끌었다.
그 결과 온수기 폐열과 주변 잡열(雜熱)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107%로 높이고, 가스비를 최고 35% 아껴주는 콘덴싱 온수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일반 온수기의 에너지 효율은 70∼80% 정도다. 또 온실가스도 적게 배출되어 환경 규제가 심한 선진국에 적합했다.
대성쎌틱은 처음에는 유럽을 공략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유럽에서는 온수기가 아닌 라디에이터로 온수를 만들어 쓰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2006년 고 대표는 미국에서 한 박람회에 참여했다가 미국 바이어들이 일본 업체 온수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돌의 원조인 한국의 보일러 제조기술이 훌륭하기 때문에 마케팅 기반만 잘 갖추면 미국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 기업도 일본 기업만큼 온수기를 잘 팔 수 있다”는 경쟁심도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미국 시장에 수출하려면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의 안전규격(ETL)을 획득해야 했다.
해외영업팀 직원들에게는 ‘ETL 인증’을 받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직원들은 ETL 인증 통과를 위해 미국의 인증 실험실 근처 호텔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동택 해외영업팀 대리는 “가스 연료만 하더라도 미국과 한국의 메탄 함유량이 다르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실험이 잘됐다가도 막상 미국에 와서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실험을 하면서 캐비닛 한 개 분량의 서류를 준비했고, 그 결과 ETL 인증을 따낼 수 있었다.
바이어들을 설득해 판로를 뚫는 것도 병행했다.
직원들은 미국에서 1년에 두 차례씩 열리는 냉난방 전시회에 꼬박꼬박 가서 바이어들에게 일일이 제품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시자가 아닌 참가자 자격으로였다.
이들은 차량에 온수기를 미리 싣고 가서, 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이 관심을 보이면 주차장에 데리고 가서 제품을 보여주는 ‘헝그리 정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이어들은 처음에는 “한국이 온수기를 만드느냐”고 의아해했지만 제품을 보여주면 기술력에 감탄했다.
대성쎌틱은 2010년까지 미국에 온수기를 연간 5만 대 수출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고 대표는 “온수기 품질은 일본 제품에 견줘도 떨어지지 않지만, 가격은 15%가량 저렴한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온수기에 붙는 관세 폐지로 가격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