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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메트로 문화&사람]육필문학관 노희정 관장

입력 | 2008-07-21 02:52:00


소나무 향 사이로 詩는 바람이 되고…

서정주-조병화 육필원고에 피천득 ‘악필’까지 전시

매달 시낭송회-동시교실 등 문학사랑방으로 정착

“노랑머리 해바라기/까만 별 촘촘히 빛나는/수정골 감자 삶아내는/삼베치마의 조막손들∼”(여름변주곡)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내린 19일 인천 강화도 늘애골(항상 사랑이 넘치는 마을)에는 12명의 문학 동호인이 모여 가슴 적시는 자작시 1편씩 돌아가며 읊조렸다.

문학인들의 자필 원고와 글, 문학서적, 세계 각국의 향토 소품을 전시하고 있는 ‘육필문학관’(강화군 선원면 연리)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마다 시 낭송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강 물줄기와 서해가 만나는 염하의 소금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은 자연을 벗 삼아 ‘문학 놀이’를 하기에 적당하다.

시낭송회가 열리는 1층 북 카페 ‘시예랑’ 쪽문을 열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이고, 창 밖의 드넓은 논 지대 끝자락엔 염하 물줄기가 흐른다.

○ 손때 묻은 전시물

관장인 노희정(47) 시인은 ‘거리 시화전’을 주관하던 고(故) 임찬일 시인에게서 물려받은 40여 점의 시화 액자를 보관해 오다 4년 전 외가가 있는 강화도에서 육필문학관을 개관했다.

노 관장은 “남편과 형부의 도움을 받아 5년 동안 설계와 건축을 거의 직접 하다시피 해 조그마한 ‘문학 사랑방’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관장이 수집했거나 지인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서정주의 ‘난초’, 조병화의 ‘나의 자화상’, 김춘수의 ‘꽃’ 등 유명 시인의 육필원고와 배용제, 이윤호, 김명인 씨 등 신춘 문예작가의 친필 글씨가 전시돼 있다.

악필이어서 절대 남에게 자필을 남기지 않는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노희정 시인에게’라는 짤막한 글을 적어 노 관장에게 선물했다. 그 악필을 구경할 수 있다.

박범신, 조정래, 이어령, 이호철 씨 등이 쓴 ‘서로 아끼고 나누며’ ‘목소리 하늘에 닿고’ 라는 좋은 글귀도 음미할 수 있다.

강화도에서 생활하는 조각가, 화가, 도예가의 작품도 1, 2점씩 감상할 수 있다.

노 관장은 해외여행을 통해 모았던 향토 민속품 200여 점을 현관 입구에 전시해 놓고 있다.

잔디마당에는 황진이, 허난설헌, 홍랑, 신사임당, 매창 등 조선시대 여류 문학가 5명의 대표 작품을 돌에 새긴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 자연 향내 풍기는 문학 프로그램

2층 다락방에서는 자연을 보면서 시를 짓도록 하는 어린이 대상의 ‘동시 교실’이 수시로 열린다.

5명 이상이 예약을 하게 되면 노 관장의 강의를 들은 뒤 자작시를 낭송하는 프로그램이다. 강의료는 무료.

노 관장은 “문학관 앞뒤의 논과 숲을 함께 쳐다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절로 시를 쓰게 된다”며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이렇게 시를 잘 쓰는지 미처 몰랐다’고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 대상 무료강좌에서 “평상시 ‘소나무 같이 든든한 아빠’ ‘진달래꽃 닮은 예쁜 얼굴’과 같은 표현을 자주 하면 시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2005년 6월부터 이곳의 시 낭송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박원석(51·회사원) 씨는 지난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