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 국무총리실 산하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다. 기획단은 지난 60년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을 연중 펼치고 있다. 국회는 지난주 제헌절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여러 학회와 시민단체가 개최하는 학술회의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건국의 의미를 뿌듯하게 느끼는 국민은 많은 것 같지 않다. 현재의 삶이 너무나 부대끼고 고달프기 때문인가.
국가원로가 정쟁 휘말리면 안돼
경제를 살려 달라고 뽑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인사정책 실패와 조급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휘청거린다. 세계 경제는 달러화 약세와 원유가 폭등으로 불안한 상태인데 금강산 관광객이 피격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니 ‘건국 60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법하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고비 고비를 잘 넘겨왔는가 되돌아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분단과 전쟁, 쿠데타와 시민혁명, 정치파동과 유신체제, 외환 위기와 이념 갈등으로 점철됐으나 모든 질곡과 파행을 이겨내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만큼 이뤄낸 나라로 성장했다.
지구촌 어느 나라 역사를 보아도 밝고 자랑스러운 역사만 지닌 나라는 없다. 어두운 역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되짚어 보면서 교훈을 얻은 나라가 발전과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한국정치학회는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전직 대통령이 격동의 정치 한복판에서 무엇을 느끼고 고민했는지 인터뷰해서 학회 소식지에 싣고 있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김영삼 전 대통령 및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터뷰하면서 필자는 우리 국민이 정치 지도자에 대해 지나치게 박한 점수를 주었던 점을 반성했다.
역사에 명암이 공존하듯 정치 지도자 역시 장점과 단점이 있을진대 시시비비를 논하기 전에 미리 한판승부를 결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소용돌이의 정치 환경에서 모든 정치 현안이 대통령에게 귀속됐고 그 결과 역시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지나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기록물 반출에 대한 논란이 법적, 정치적으로 어떻게 정리가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이 논란으로 전직 대통령의 위신이 또다시 추락하고 흠집 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전직 대통령의 언행이 국가원로다운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쟁에 휘말리면 곤란하다.
1987년 이후 다섯 명의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 직접 선출했다.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우리가 뽑은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사랑과 존경심을 갖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존중하는 일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남북 긴장관계를 완화한 주역은 물론 국민이지만 그 앞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대통령임을 부정할 수 없다.
존경받는 지도자 많아져야
중국과 일본에서는 전·현직 정치지도자를 훌륭한 리더로 묘사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와 정치지도자 그리고 일반 국민을 일체화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볼 수 있으나, 정치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존경은 곧 자중자애(自重自愛)와 자긍심으로 이어지고 국가발전과 사회 안정의 기반이 된다.
건국 60년을 맞아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리더십과 행적을 되돌아보면 장단점과 긍정 부정의 평가 속에서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국민’은 ‘기적의 역사’를 머리로 인식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한국정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