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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the Air]엄마가 뿔났다 대본 연습 현장 가보니

입력 | 2008-07-22 03:01:00


배우 김지유 ‘야아아아 야아아아아 너, 진짜’ 이걸 어떻게 읽죠?

작가 김수현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나온 대로 하면 되지”

대본 연습도 ‘뿔난 듯’

18일 오후 7시 KBS 별관 3층에서 열린 KBS2 주말극 ‘엄마가 뿔났다’(토·일요일 오후 7시 55분)의 대본 연습 현장. 김수현 작가, 정을영 PD, 탤런트 김혜자 등 23명이 대본 연습에 한창이었다. 연습은 매주 금요일이고 대본은 목요일 2회분이 배포된다. 해당 연습분은 2주 뒤에 방영된다.

이 드라마는 20일 시청률 35%(AGB닐슨 집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수현 드라마’의 대본 연습 현장은 실전이나 다름없다. 신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참 연기자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야단을 맞는다.

오후 6시 50분. 대본 연습을 앞둔 연습실은 화기애애했다. 일찍 도착한 김 작가와 몇몇 배우는 탁자에 간식을 차려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극중 손자로 나오는 인성이 크는 얘기, 얼마 전 김 작가가 키우기 시작했다는 강아지 얘기 등.

10여 분 뒤 정 PD가 도착한 뒤 연습이 시작됐다. 매주 하는 대본 연습이지만 연기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순간 정적이 감돈다.

“(자신도 모르게 후우우우우 한숨).”

먼저 실연 당한 충복 역을 맡은 이순재가 지문의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한숨을 쉰다. 배우들은 ‘이저’ ‘으흐흐흐’ ‘뭐야아아’ ‘엇쩌면’ ‘낭중에’ 등 의성어와 사투리, 말의 여운, 강약까지 대본에 적힌 그대로 연기한다.

나이석(강부자)의 딸 은실 역의 김지유가 갑자기 얼굴을 붉힌다. 대본에 나온 “야아아아 야아아아아 너, 진짜”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해한 것. 주저하는 김지유에게 김 작가가 톡 쏘듯 한마디 한다. “나온 대로 그냥 따라하면 되지.”

김 작가 작품의 대본 연습에는 주연 조연은 물론 단역까지 모두 나오는 게 원칙이다. 이날 미세스 문, 수선집 아줌마 조 씨 등 단골 단역 외에 단역 4명이 탁자 옆에 따로 마련된 보조석에서 대본을 독파 중이었다. 한 명은 “저는 쪼오끔 더 짙은 색이 좋을 것 같은데”가 대사의 전부인 ‘아가씨’역이었고 다른 한 명은 “네 사장님”만 하면 되는 ‘웨이터’ 역. 한 명은 아예 대사가 없었다.

긴장 속에도 가끔 웃음이 터진다. 대본 중간 등장하는 감칠맛 나는 표현 때문. ‘어이구 팔월에 먹은 송편 올러온다’ ‘꿩새 울구 날아갔어’ ‘기차 화통 삶어 먹은 거 모양’ ‘나는 당신 식민지가 아니요’ 등 김수현 작가의 전매특허 표현에 배우들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김 작가의 송곳 같은 지적은 베테랑 연기자들도 피할 수 없다. 이날 ‘요주의 인물’은 김진규를 연기하는 김용건이었다. 평생 고은아(장미희)를 떠받들던 김진규가 이혼을 요구하며 그동안의 한을 토해내는 장면, 숨쉴 틈을 주지 않는 대사가 빽빽하다. 김 작가는 한마디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목소리 톤이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차분하게 단단하게. 이제까지 진규는 얼뜨기 같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얘기해야지.”(김 작가)

“네, 네.”(김용건)

김 작가는 연기 시범도 직접 보였다. 은실과 김 기자가 티격태격하던 중 넘어지자 김 기자가 은근슬쩍 껴안는 상황. 어색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던 김태우를 보다 못해 김 작가가 나섰다.

“은실이 상 위에 있는 상태에서 ‘아아 선배 탱탱하다아아∼’ 이거지. 더. 더 리얼하게 연기해봐.”

자칫 배우와 연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사안이다. 김 작가는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나 쓰는 사람이잖아. 내 대사에 내 세계가 다 담겨 있으니 내 톤으로 해야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