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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통장에 딱걸린 前장관

입력 | 2008-07-22 03:01:00


강무현 前해양 차명계좌에 덜미 잡혀 구속

검찰 다른 사건 수사하다 병원 직원 명의 계좌서 2억원 ‘상식밖 거래’ 발견

“강前장관에 이름 빌려줘” 직원 진술 확인 계좌추적, 업체서 1억수뢰 ‘대어’낚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갑근)는 올해 4, 5월 다른 사건 수사를 하던 도중 10만 원권 수표 여러 장이 병원 직원 명의의 계좌에 입금된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계좌에서 입출금된 수표와 현금만 무려 2억여 원. 병원 직원이 업체에서 거액의 돈을 받는 것이 ‘상식 밖’이라고 판단한 검찰은 이 계좌의 주인을 불렀다. 생각지도 않은 진술이 튀어나왔다.

“강무현(사진) 전 장관의 처가 병원에 근무하는데, 그쪽에서 계좌를 빌려달라고 했다.”

이후 검찰은 수표 등에 대한 추적을 통해 강 전 장관이 해운업체와 항만공사 관련 업체에서 받은 돈의 일부가 차명계좌에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강 전 장관은 18일 오전 10시 검찰의 첫 조사 때 자술서를 통해 “1800만 원의 금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표 추적 결과의 일부를 보여주며 추가 금품 수수 여부를 추궁하자 그는 곧 “3600만 원을 받은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의 끈질긴 추궁에 강 전 장관은 14시간 만인 이날 밤 12시경 1억 원 가까운 뇌물을 받은 사실을 결국 자백했다.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문화공보부와 해운항만청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 해양부 차관과 장관을 지낸 그의 30년 공직 생활이 ‘불명예’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고위 공직자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차명계좌를 운용하는 사례 중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수사관계자들은 말한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정치인 여러 명이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활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과는 별도로 전직 장관급 고위 공직자 L 씨도 친인척 명의로 차명계좌 수십 개를 개설해 수십억 원을 운용한 것으로 최근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올해 초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계좌 추적을 하던 중 L 씨가 공직자 재산신고 때 누락한 친인척 명의의 계좌를 우연히 찾아냈다.

검찰 관계자는 “L 씨의 계좌에 꽂힌 수표는 단 한 장도 일련번호가 연속된 게 없었다”며 “자금 세탁이 치밀하게 이뤄진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L 씨의 자금 출처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한편 검찰은 강 전 장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21일 구속했다. 노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그는 장관 때 해운업체인 D사가 항로 개설 등을 부탁하며 건넨 2000만∼3000만 원을 받는 등 2, 3개 업체에서 6000만∼7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차관 때도 떡값 명목으로 3, 4개 업체에서 수백만 원씩을 정기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