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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벌금 효과’

입력 | 2008-07-23 02:57:00


싱가포르로 단체여행을 해 본 사람이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현지 가이드가 가장 먼저 주의를 주는 것이 벌금제도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면 30만 원(2회부터는 가중), 전철에서 음식물을 먹어도 30만 원, 금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60만 원…. 보통의 한국인이 한국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싱가포르에서 행동할 경우 물 수 있는 벌금이 하루에 무려 1000여만 원이나 된다고 어느 주간지가 추산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법을 지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정부는 어제 공무원과 공무원에 준하는 사람이 뇌물성 금품을 받을 경우 징역형과 함께 금품 수수액의 2∼5배에 이르는 벌금을 물리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뇌물을 요구하거나 주고받기로 약속만 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현행법상 뇌물죄에는 징역, 자격정지, 몰수·추징만 적용되지 벌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뇌물사범의 실형 선고율이 4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징역형 위주의 처벌만으로는 공직부패 척결에 한계가 있어 벌금형을 병과하기로 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형벌의 기본 취지는 위법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범죄 예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벌금형이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벌금 액수가 낮고 불법성이 비교적 작은 행위에 대해서만 부과되고 있어 처벌과 예방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일부 선진국처럼 벌금형을 대폭 강화하되 범죄의 정도와 범죄자의 경제적 부담 능력을 연계해 벌금을 부과하는 일수벌금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불법 촛불시위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사람은 모두 1027명이다. 이 중 구속된 사람이 9명이고 불구속 936명, 즉결심판 56명, 훈방 26명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즉심에 회부된 사람 대부분이 10만∼15만 원의 벌금 선고를 받았지만 경찰서 구금일수에 따라 하루 5만∼6만 원씩 보상해 주는 제도 덕분에 실제로는 한 푼의 벌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관대한 정부이고 경찰이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치는 세상이 된 까닭을 알 만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