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놈놈놈, 빛나는 조연들
한국 영화 화제작 두 편에 대한 기대가 뜨겁다. 17일 개봉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감독 김지운·제작 바른손엔터테인먼트)은 첫 주말 220만 관객을 기록하며 화끈하게 출발했다.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 곳에’는 이준익 감독의 절제와 수애의 깊은 감성이 만나 기대가 뜨겁다.‘놈놈놈’은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세 명의 정상급 스타가 주인공이다. ‘님은 먼 곳에’는 최근 급성장한 여배우 수애가 단독 주연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금같은 존재들이 있다. ‘놈놈놈’의 류승수와 ‘님은 먼 곳에’의 정진영.
‘놈놈놈’의 만길(류승수).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말에 끌려 다니며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만길의 희생이 없었으면 세 놈들의 멋들어진 추격도, 비장한 마지막 결투도 없었다.‘님은 먼 곳에’의 정만(정진영). 베트남에서 한 목 단단히 잡으려는 위문공연 밴드의 리더. 순이(수애) 속여 돈 뺏은 것도 모자라 짧은 옷 입히고 노래 시켜 돈을 번다. 그래도 정만이 없으면 순이는 이국타향 베트남에서 혼자다. 남편 찾아 삼만리 순이 곁에는 그래도 정만이 있었다.
○ 류승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불쌍한 놈
세 명의 잘 나가는 ‘놈’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자신에 대해 류승수는 “불쌍한 놈”이라고 했다. “불쌍해요. 한 목 챙겨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그 시대 만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사람. 그런데 그게 잘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불쌍한 놈이죠”
류승수는 ‘놈놈놈’의 핵심 키워드 ‘보물지도’ 때문에 마적단 두목 창이(이병헌)와 싸운다. 그는 목숨을 걸고 지도를 지켜 친형처럼 따르는 태구(송강호)에게 전한다. 그런데 세 명의 ‘놈’들이 정말 목숨 내놓고 서로를 추격하는 순간 그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좀 더 역할이 많았고 촬영도 많이 했지만 세 명의 ‘놈’에 집중한 영화는 그에게 꼭 필요한 장면만 남겼다.
하지만 마치 만담을 나누는듯한 그와 송강호의 대화는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 중 하나며, 이병헌과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칼싸움은 가장 치열하다.
“만주 벌판에서 오토바이로 강호형을 구출하는 한 장면을 찍느라 열흘 넘게 사막에서 기다리기도 했어요. 날씨가 변화무쌍이라 그 만큼 모두에게 기다림이 필요했던 작품,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분량은 중요치 않아요. 기념비적인 한국영화에서 제 맡은 역할을 했다는 게 배우로 가장 보람입니다”
그는 주위에서 우정출연을 부탁하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선뜻 나서는 천상 배우다. 그렇게 출연한 작품만 10편이 넘는 ‘좋은’ 사람. 하지만 연기 앞에서는 좋은 사람보다 독한 사람이 된다.
마적단 말에 끌려가며 온 몸에 상처가 났고 말에 밝힐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대역 없이 소화했다. ‘놈놈놈’ 후반부 만길이 없는 태구가 외로워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 님 찾아 가는 길 동무, 미워할 수 없는 악당 정만
‘님은 먼 곳에‘에서 순이는 갈 데가 없다. 월남에 간 남편을 찾아야하는 일은 그녀에게 선택이 아닌 숙명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해줄 사람도 해 준 사람도 정만 뿐이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사기를 쳐 살아남는 잡초 같은 인생, 얄미운 사기꾼이다. 하지만 정만 장진영은 스크린 밖으로 나오자 미소가 정말 따뜻하다.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까지 불리며 ‘황산벌’, ‘왕의 남자’, ‘즐거운 인생’까지 내리 주인공을 했던 정진영. 이번 영화는 조연이다.
“시나리오도 나오기 전에 하자 해서 그냥 ‘그래요’ 했는데 웬걸, 시나리오 보니까 이건 사기꾼에 악당이고...하하하. 딱 하루 서로 소리 지르며 ‘이게 뭡니까?’, ‘그냥 해 잘 찍어줄게’ 그러고 말았죠”
정진영은 오랜만에 맡은 조연이지만 밴드를 위해 색소폰까지 배우며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준비를 했다. “순이라는 어머니 같은 여성이 불쌍한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정만은 기지촌에서 부모 없이 자라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이라 설정했고. 당연히 사랑도 모르고 순이가 왜 남편 찾아 가는지도 알 턱이 없는 인간인데...전쟁터에서 순이의 구원을 받고 충실한 마부가 되는 거죠”
정진영은 지금까지 함께 영화에 출연한 상대가 모두 큰 배우로 성장한 경험을 갖고 있다. “ ‘약속’때 박신양, ‘링’의 신은경, ‘왕의 남자’ 이준기 모두 기분 좋죠. 함께 한 사람들이 잘되고 좋은 배우가 되면. 그런데 나는 뭐 별로”(웃음)
그는 전쟁터를 함께 누빈 수애를 가리키며 “굉장히 묵직하다. 방금 봤는데 아직도 순이 같다”며 정만처럼 웃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photolim@donga.com/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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