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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세계철학대회’여는 한국 우리 철학도 되돌아봐야

입력 | 2008-07-24 02:49:00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대회가 열린 뒤 108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대회입니다. 한국 철학계가 이룩한 커다란 ‘사건’입니다.”

30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세계철학대회의 이명현(서울대 명예교수) 조직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를 ‘사건’으로 표현했다. 조직위 교수들의 자랑은 이뿐 아니었다. 2003년 세계철학대회 총회에서 서양철학의 시원(始原)인 그리스를 제치고 대회를 유치했으며 아시아에서 일본보다 앞서 대회를 개최한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21일 고려대에서 막을 올린 세계언어학자대회에서도 비슷한 자평이 쏟아졌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대회”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중국을 제치고 대회를 유치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5년마다 열리는 두 ‘학문 올림픽’을 한국이 한 해에 나란히 개최한다는 사실은 세계 지식인 사회의 이목을 끄는 ‘쾌거’임에 분명하다. 교수들은 “그동안 한국 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강의하고 연구를 해 온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에 들떠 한국의 학계가 현 상태에 안주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자중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보다 연구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들이 최근 바짝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이번 세계철학대회에 가장 참가자가 많은 나라는 러시아로 244명이 등록을 마쳤다. 두 번째는 185명이 등록한 중국이다.

러시아는 5년 전 터키 대회부터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철학대회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 학자들은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준 유람선으로 터키에 도착해 유람선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번 서울 대회에 참가하는 러시아 학자들은 대회를 마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철학 열차’를 운행한다. 기착지마다 현지 철학자들과 철학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중국도 당 차원에서 서양철학 전집 번역을 지원하고 있다.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은 마르크스와 레닌 사상에 익숙해 서양 철학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한국의 연구 수준이 앞서 있지만 언제 따라잡힐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를 듣고 보니 이날 이삼열 한국철학회장이 지적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한국 철학계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의 철학을 외워 가르치느라 우리 철학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철학을 외면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고 철학이라는 학문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