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연]“뮤지컬계의 ‘일라이자’ 된 것 같아요”

입력 | 2008-07-24 02:49:00


■ 1183 대 1 경쟁 뚫고 공개 오디션 우승 임혜영

“당신 노랫소리는 듣기가 싫어요.”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데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노래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한 심사위원의 쓴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118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공개 오디션에서 우승한 임혜영(26) 씨의 이야기다. 오디션 내내 ‘독설가’로 유명했던 변희석 음악감독의 말이었지만 충격은 컸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잠이 안 올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고 오디션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뮤지컬 배우에게 노랫소리가 듣기 싫다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 일라이자 역의 공개 오디션 과정은 국내 최초로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인 ‘온 스타일’에서 ‘싱잉 인 더 스카이’라는 제목으로 안무, 연기, 보컬 수업, 체력 강화 등 혹독한 훈련을 거치는 참가자들 중 매회 심사를 통해 탈락자가 선정돼 마지막으로 남은 참가자가 우승하는 과정을 다뤘다.

“발표가 나던 날 결선에 진출한 4명의 얼굴이 화면에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제 얼굴이 클로즈업됐어요. 심사위원인 전수경 씨가 ‘임혜영씨가 됐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순간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멍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임 씨에 대해 “성악을 전공해서 노래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 크고, 극 중 일라이자의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배우”라고 말했다.


▲ 영상 취재 : 유성운 기자

임 씨는 2006년 뮤지컬 ‘드라큘라’의 앙상블로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25세로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대학 때만 해도 뮤지컬 배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유학 준비를 하던 중 선배의 권유로 ‘드라큘라’ 오디션을 함께 봤다가 합격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그리스’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을 통해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뒤 2년 만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 초연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여주인공으로 서게 됐으니 ‘신데렐라’ 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러나 ‘신데렐라’가 되기까지 3개월의 공개 오디션은 가혹한 시간이었다.

“오디션 내내 긴장과 자괴감에 빠져 살았어요. 그때그때 주어지는 노래와 연기 과제는 준비 시간이 부족해 늘 엉망이었고 비수 같은 비평이 돌아왔죠. 하루는 미션으로 노래가 주어졌는데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편집이 안 되고 방영됐는데 그걸 보신 엄마가 전화를 하셔서 ‘이젠 못 보겠다’고 하시더군요.”

‘마이 페어 레이디’는 런던 뒷골목에서 꽃 파는 처녀 일라이자가 우연히 만난 언어학자 히긴스를 통해 품위 있는 숙녀가 되고 사교계의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1956년 뮤지컬로 만들어져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

“‘뮤지컬계의 일라이자’가 된 것 같아요. 더블 캐스팅된 선배 (김)소현 언니의 노래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뮤지컬 배우로 많은 공부가 돼요. ‘마이 페어 레이디’에 비유하면 저는 일라이자가 세련되어지기 직전인 1막 후반부에 서 있습니다.” 22일∼9월 14일, 02-3991-70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