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터넷 기업 가운데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이 몇 개나 될까? 다음이 투자했던 라이코스도, SK컴즈의 해외판 싸이월드 역시 현지에서 주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동아시아라는 지역과 한국어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구글이나 마이스페이스 같은 세계적 미디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봉쇄된 것은 아닐까?
이 같은 편견에 반기를 든 기업이 있다.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음악 사이트 '큐박스닷컴(www.Qbox.com)'이 그 주인공.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브라질과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음악을 만나기 위해서는 큐박스에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웹2.0 방식인 SMS(Social Music Service)라는 독창적인 컨셉을 내세운 큐박스의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큐박스 플레이어를 다운받아 음악을 검색하면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등 전 세계 1인 미디어의 배경음악으로 깔린 음원을 찾아내 틀어주는 방식이다.
mp3 파일 다운 방식이 아닌 스트리밍(Streaming 실시간 재생) 서비스이기 때문에 음질은 썩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세계 무명 가수들의 새로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매력만으로 전 세계 '뮤티즌'들을 유혹하기 충분하다. 미국 최대의 mp3유통업체인 iTunes에 600만 곡이 존재한다면 큐박스에는 340만 뮤지션의 2000만 곡이 검색된다. 말 그대로 세계 최대의 음원 전시장인 셈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미국 스타벅스에는 월 4만원을 내면 무선 인터넷을 무한정 쓸 수 있어요. 큐박스의 초창기 미국 사무실은 실리콘 밸리 그리고 뉴욕 42번가 모퉁이 스타벅스였고, 밤에는 호텔방에 들어와 내일의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큐박스 미국사무실에 와보겠다고 하면 곤혹스럽더군요."(큐박스 권도혁(34) 부사장)
2005년 11월 큐박스 한국 서비스가 오픈했다. 한국에서 1세대 개발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백성남 대표가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와 네이버 블로그 배경음악 공유서비스를 구상한 데서 비롯한 것. 국내 엔젤 투자자들의 십시일반 도움이 있었지만 국경을 초월하는 음악 비즈니스의 속성상 자연스레 해외진출이 필연적으로 제기됐다.
테헤란로를 뛰어넘어 실리콘 밸리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누리꾼을 공략할 수 있는 글로벌화된 인재 영입이 필수적이었다. NHN과 첫눈에서 인수 합병(M&A) 전문가로 활약하다 큐박스 부사당로 발탁된 권 씨는 큰 투자 없이 인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파트너'라는 제도를 창안해 냈다.
흔히 '스톡옵션'이라 불리는 제도인데, 큐박스는 미국 영국 중국 인도 등 그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하되 전업(專業)이 아닌 부업(副業)으로만 일하게 하고, 그 노력에 대해 현금이 아닌 큐박스의 주식으로 보상하기 시작한 것. 어차피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니 사무실에 모일 필요도 없었다. 결국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은 주말에 스카이프(SKype)로 회의하고 구글 문서편집기(Google Docs)로 문서를 공유하며 큐박스의 비전을 구체화해 나갔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 벤처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첫 사례'가 꿈
우리가 미국판 싸이월드쯤으로 알고 있는 '마이스페이스(www.myspace.com)'는 알고 보면 세계적인 음악 사이트다. 300만 명이 넘는 무명의 뮤지션들이 생산한 1200만 곡이 넘는 음악이 활발히 소통되며 매순간 깜짝 놀랄만한 스타 탄생의 무대가 된다.
영국판 싸이월드이자 음악 사이트인 비보(www.bebo.com)는 얼마 전 미국 AOL에 8500억 원이라는 거금에 팔려 벤처 신화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권 부사장은 이제는 그 신화를 한국계 큐박스가 이룰 순서라고 자신한다.
"초창기 미국의 투자자들이 큐박스의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팀 전체가 한국인들로 구성된 기업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겠냐?'고 의문을 표하더군요.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 네트워크가 구축됐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에요."
미국을 비롯한 해외 미디어들의 관심도 뜨겁다. 미국의 온라인 전문지 CNET은 얼마 전 "큐박스는 궁극의 플레이어(the ulimate player)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크를 음악 서비스로 승화시킨 큐박스의 시도가 음악 서비스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권 부사장는 지난해 7월 혈혈단신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여러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상대하며 큐박스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그 성과도 눈앞에 두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이나 싸이월드 같은 인맥관리사이트(SNS: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으나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조그마한 한국시장에 갇혀 있잖아요. 큐박스를 온라인 음악 시장의 최강자로 키울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그럴 때가 됐어요."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