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고유가에 기러기 가족은 ‘더 외로워’

입력 | 2008-07-24 16:02:00

'오늘은 학교는 어땠니?' 늦은 밤, 기러기 아빠가 아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있다.


남편 직장이 부산, 자신의 직장은 서울이라 주말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50)씨는 매주 번갈아 서울과 부산을 오가곤 했지만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들어 3월부터 왕래 횟수를 2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이 씨는 "밑반찬과 옷가지 등을 들고 KTX를 이용하는 것이 번거로워 직접 운전을 해 왔는데 기름값이 너무 올랐다. 반찬도 나르고 청소도 해 주어야 하는데 혼자서 생활하는 남편이 요즘 더욱 안쓰럽다"라고 말했다.

'기러기 가족' 이 고유가에 더 외로워졌다. 기름값이 L당 2000원을 넘어선 뒤 떨어질 줄을 모르면서 주말 부부나 유학생 등 '기러기 가족'들이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있다.

● 주말 부부들 "교통 요금 너무 부담돼"

이씨의 경우 승용차(1500㏄급)를 타고 서울~부산을 주말에 이용하면 기름값만 12만원 정도 드는데다 통행료 3만6600원 등을 포함하면 15만원이 훌쩍 넘는다. 한국석유공사 주유소 가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500원대에 머물던 휘발유 가격(서울 평균)은 3월 들어 1800원대로 올랐다.

제주도에 본사를 둔 D사에서 일하고 있는 임모(31)씨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부인과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주로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왔지만 7월 1일 유류할증제도가 도입되면서 저가 항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회사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비행기 요금을 감당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제주 간 왕복 요금이 아시아나의 경우 18만 5000원(주말기준)이지만 한성 항공은 13만 9800원(주말기준)이다.

"저가 항공은 소음도 심하고 좁고 불편하지만 생활비가 자꾸 느는데 어쩔 수 없죠. 저가 항공은 좌석 수가 적어 예약을 못 해 서울 행을 포기할 때도 종종 생겨요"

임씨는 현재 주소지를 제주도로 옮기는 것도 고려중이다. 항공사들이 제주도민에게는 비행기 요금을 15% ~30%까지 할인해 주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는 김모(31) 씨는 한 살 된 자녀를 익산 본가에 맡겨 키운다. 아기를 보고 싶은 마음에 주말이면 익산을 다녀오는데 기름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연초부터 KTX를 이용하고 있다. 아직 KTX 요금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하반기에 공공요금이 인상된다고 하여 걱정이다. 현재 서울에서 익산까지 주말 요금은 2만9600원으로 부부가 왕복하게 되면 11만 8400원이 든다.

"요금이 오르면 매주 부부가 익산에 가는 것이 점점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아기를 맡아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빈손으로 갈수도 없구요. 한 시간 가량 이동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생각중이에요."

● 유가-환율 이중고, 유학생은 더 힘들어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생활 중인 장모(31)씨는 올 여름 귀국을 포기했다. 유학생 부부인 장씨가 부인과 함께 귀국할 경우 왕복 항공료만 300만원이 훨씬 넘게 드는 데다 환율이 오른 탓에 학비도 쪼들리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뵙고 싶고 따뜻한 밥도 먹고 싶지만 내년 여름 장인어른 환갑 때로 방문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실제로 유가, 생필품 가격, 환율이 모두 치솟으면서 '기러기 가족'의 고통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두 집 살림을 유지하는 기본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라 고민만 늘어난다.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이(42)씨는 "교육과 직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하지만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자주 만나지도 못하다니 서러운 생각이 든다"며 "경제 사정이 더 안 좋아지면 '기러기 가족'에게 먼저 타격이 올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