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TV 프로그램에 피겨 스케이팅이 단골 메뉴였던 시절이 있었다. 제법 아득한 것이 20년도 더 된 것 같다.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얼음 위에서 남녀가 짝을 이뤄 펼치는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했다.
당시 한국인에게 피겨 스케이팅이란 러시아 볼쇼이 서커스단의 쇼처럼 브라운관에서만 볼 수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대상일 뿐이었다.
그랬던 피겨 스케이팅이 요즘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난 주말 또 한 번의 피겨 아이스쇼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현대카드가 하고 있는 ‘슈퍼매치’라는 이름의 시리즈 중 하나로 마련된 아이스쇼다.
아이스쇼는 이제 국내에서 매년 2차례 정도 열리는 단골 공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피겨가 한국인에게 부쩍 가까워진 것은 ‘피겨 요정’ 김연아(18·군포 수리고)의 스타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지난 주말 공연에서 국내 피겨 팬들의 관심이 김연아를 넘어 피겨 자체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빙상 담당 기자로선 더욱 반가웠다. 19, 20일 한 차례씩 열렸는데 19일에는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7000여 관중석에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티켓 한 장이 3만3000∼9만9000원(일반가)의 고가였고 김연아도 출연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참 독특한 종목이다.
대회장에서의 피겨가 규정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면 공연으로서의 피겨는 예술성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수들은 공식 대회에서는 발휘 못하는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그래서 공연장에서의 피겨가 좀 더 감동적일 수 있다. 쇼를 관람한 한 여대생은 “좋은 영화 몇 편을 보고 나온 듯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12월에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최하는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다. ‘아름다운 스포츠’ 피겨가 계속 국내에서 그 인기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