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는 1등만 했대요/노경실 글·김진화 그림/40쪽·8500원·시공주니어(6세∼초등 1학년)
《심각한 표정의 아빠와 아빠를 쏙 빼닮은 아들의 모습이 담긴 표지와 제목만 봐도 벌써 짐작이 간다.
아빠는 결코 1등만 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하지만 이 그림책은 시침 뚝 뗀 채, 꼬마의 진지한 고민으로 시작한다.
“우리 아빠는 어릴 때 뭐든 1등만 했대요. 그런데 나는 왜 1등을 못하지요? 나는 우리 아빠 아들이 아닌가요?”》
아빠가 한 ‘1등’은 이런 거다. 받아쓰기는 했다 하면 1등이었고, 여자 애들한테도 인기 1등이었고, 뭐든 잘 먹어 감기 걸린 적 없을 만큼 건강도 1등이었고, 책도 진짜진짜 많이 읽어서 독후감 쓰기도 늘 1등만 했단다.
아들이 고민할 만하다. 아들은 받아쓰기 60점에, 좋아하는 여자애는 일부러 피하고, 콩도 싫어하고, 책 대신 만날 게임기만 붙잡고 있다가 야단맞기 일쑤니까.
아빠를 쏙 빼닮은 아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봐도 아빠와 나는 붕어빵인데 아빠는 뭐든지 나랑 달랐대요. 난 믿을 수 없어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는 시공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아들은 아빠의 ‘1등’ 얘기가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아빠의 어린 시절을 찾는다. 아들이 알아낸 아빠의 과거는? 받아쓰기는 만날 1등이었다던 아빠의 빵점짜리 답안지. “하라버지(할아버지), 꼬추받(고추밭), 암녹깡(압록강)….” 반찬투정하며 ‘에취’를 연발하는 아빠, 책 대신 TV 앞에만 앉아 있던 아빠, 좋아하는 여자아이 옆에서 얼굴이 빨개지던 부끄럼쟁이 아빠.
아들은 아빠가 어릴 때 자기랑 똑같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좋아한다. “나는 우리 아빠 아들, 아빠는 진짜진짜 우리 아빠!”
발랄한 문체와 사진과 일러스트를 결합한 독특한 그림이 잘 어울린다. 아빠와 아들만이 누릴 수 있는 유대감을 남자 화장실에서 같이 소변보는 장면 등을 통해 재치 있게 드러냈다.
시종 경쾌하게 진행되는 이 그림책은 딱 한 장면을 통해 아빠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애가 기죽는다”며 “만날 1등 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아빠는 대답한다. “아니야, 그래야 나를 본받아 뭐든지 잘하지.” 아이 앞에서 훌륭한 롤 모델이 되어주고자 하는 아빠의 바람과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진다.
아이는 물론, 한 번쯤 “아빠(엄마)가 너만 했을 때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거짓말을 해 본 부모라면 뜨끔하면서도 쿡쿡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유쾌한 그림책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