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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칼럼]1951년과 2008년 ‘공포의 비교’

입력 | 2008-07-28 03:01:00


중앙선 원주역에서 청량리행 기차를 타면 세 번째가 간현(艮峴)역이다. 1951년 여름을 간현에서 보냈다. 현재 유원지가 되었지만 당시엔 40가구 안팎의 한촌이었다. 중부전선 미국 해병대의 철도 보급 최북단 지점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하역한 보급품이 간현까지 오면 노무자들이 짐을 부린다. 그러면 전방인 춘천 쪽에서 트럭 20대 정도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보급품을 다시 트럭에 싣는데 60명 정도가 하역작업에 종사했다. 대부분 피란민으로 충북 청주에서부터 따라왔다. 그해 3월엔 경부선을 이용한 철도 보급 최북단 지점이 청주였으나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원주 간현으로 이동했다.

노무자들은 맨땅의 천막막사에서 기거했고 마을에 집을 정해놓고 끼니를 때웠다. 대개 4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주인을 정했고 주급을 탔기 때문에 밥값도 일주일분을 선불로 치렀다. 변소가 따로 없어 밥집 뒷간을 썼다.

나는 5명으로 된 조에 속해 있었다. 주인을 정하고 달포가 지나서야 주인집에서 한센병 환자 가족을 숨겨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평소 배짱 있게 거친 언동을 하던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센병자와 한집서 지낸후 절망

문둥병이라면 불치의 천형병(天刑病)이요 전염병이라고만 알고 있던 터였다. 신체의 상하 출입구가 모두 병균에 노출된 생활을 달포 넘게 했으니 꼼짝없이 당했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살겠다고 이리 가고 저리 뛰다가 여기서 파멸을 맞는구나, 징그럽게 추악한 파멸을 맞는구나 하는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밤에 잠도 안 오고 억울하고 참담해 막사 밖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몸에 있는 분홍색 반점이 병의 단서였다는 시인 한하운의 경우를 알고 있어서 강에서 목욕할 때 몸을 유심히 살폈다. 그 버릇은 분홍색 반점에 대한 공포와 함께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광우병 동영상을 보고 40대까지 살아 있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고 죽음에 대한 공포만을 느꼈다는 중학생의 글을 보자 50여 년 전 소싯적 일이 생각났다. 당연히 그 공포를 이해한다. 소아 신경증 환자 중엔 쇠고기만 봐도 겁에 질리는 강박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많다고 한다.

호들갑을 떤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쇠심줄이나 철사줄 신경이라면 몰라도 공포의 영상물을 보고 태연할 자는 없다. 특히 연소자가 그럴 것이다. 의도적 공포 확산의 정당성 및 적정성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분명하게 가려질 것이다.

균형 잃은 쏠림현상은 우리 사회의 위험한 병리현상이다. 며칠 전 용인 화재로 7명이 죽었다. 벙커 지붕이 무너져 희생된 군인도 있었다. 작년도에 14세 미만 아동실종 신고건수는 8602건이고 미발견자도 59명이나 된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6년도에 7822명이었다. 하루 평균 21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에이즈 환자가 적절히 관리되는지 의문이지만 증가일로에 있다. 대충 2만 명이라는 추정도 있다. 환자 접촉이 아니라도 상처를 통해 에이즈균은 감염된다.

작년도 자살자는 1만2000여 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넘어섰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살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인 경우가 많다. 모두 동영상으로 실감나게 찍어 방영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형 불발탄 밑에서 산다는 공포감과 스트레스에 우리 모두가 전율할 것이다. 그리고 내남없이 중증 신경증 환자가 될 것이다.

광우병 걱정 이성적인 것인지

어디 그뿐이랴. 칠레산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 한다. 중금속에 오염된 중국산 식품도 꾸준히 보도된다. 살균제로 목욕시킨 필리핀 바나나도 있다. 항생물질을 과도하게 주사한 양식 어류와 가금류가 태반이다. 대도시의 대기 오염도가 담배 몇 갑에 맞먹는 독성을 갖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진실을 알면 금연 노력이 아주 허망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병원에 갔다가 질병에 감염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크고 작은 위험을 떠안고 항상적인 위기의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을 냉철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쇠고기 공포의 회오리를 우리의 일상적 안전도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대처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