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여행법/진동선 지음/북스코프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초점과 구도, 노출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감성으로, 눈이 아닌 가슴으로, 뷰파인더가 아닌 마음의 프레임으로 플랑드르 길과 만난다. 그 다음은 카메라가 알아서 찍는다.”》
父女가 가슴으로 찍은 유럽풍경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되돌아보기 위해 존재한다.”
짧지만 멋진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진 여행기’다. 사진평론가인 저자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딸과 함께 유럽으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와 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 니스와 아비뇽,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와 룩셈부르크 등 유럽 5개국 주요 도시 13곳을 만났다. 아름다운 미술관과 박물관이 가득한 예술 도시들에서 부녀는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저자는 사진이 “시간의 알리바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시간이 하나의 증명처럼 남겨놓은 삶의 풍경을 여행 사진을 통해 다시 만난다”는 것. 그에게 여행 사진은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멋진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크지만, 이 책은 단순히 여행 사진집은 아니다. 저자는 여행 내내 깨닫고 딸에게 들려준 사진에 대한 철학을 다시 독자에게 들려준다. “빛은 색을 만들고 색은 감동을 만든다. 새벽의 거리에서 빛과 색이 춤을 춘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독일 카셀에서 맞은 새벽 풍경은 이 말을 증명한다. 새벽 어스름의 신비로운 느낌이 푸른색과 어울린다. 아침 해가 어스름을 물리친 아침의 카셀은 선명하고도 상쾌하다.
길 위의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도 사진도 길 위에 있다. 끝없이 다가서면 또 그만큼 멀어지는 길 위에서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의미는 사라짐이다. 길도 사진도 사라짐을 전제로 한다.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이미지로 끝나고 마는 사라짐의 기표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길은 독일 아우토반 너머로 펼쳐지는 시원한 풍광인 동시에 끝없이 펼쳐지다 사라지는 풍경이다. 여행 중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의 희로애락 표정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존재는 삶 속에서 부단한 이별 연습이 필요하다. 이별 연습이 있었기에 모든 이별로부터 이 정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딸에게 말한다. “도시를 만날 때 중요한 건 그 도시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시가 너에게 어떻게 다가오느냐 하는 거야. 많은 도시를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훗날 그 도시가 너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중요하지.”
저자에게 사진은 기억의 방식이다. 기억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장 사진적’인 것은 자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 이미지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프레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좋은 사진에 대한 ‘강의’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빛과 그림자다. 이 둘은 한 몸이다. 책 마지막에 사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할 촬영 장비, 훌륭한 여행 사진 촬영의 비법도 정리했다.
여행작가 박준 씨는 “‘흔들리지 않는 삶이 없듯이 흔들린 사진 또한 자연스럽다’는 저자의 말이 참 좋다. 여행길에서 읽으면 좋지만 길 위에서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저자는 열흘 동안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5개국을 부지런히 돌았다. 고작 열흘인데 사진은 왜 그렇게 좋은가?”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