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이유미 지음/다른세상
《“야생화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눈높이를 낮출 준비를 해야 된다. 금창초는 눈을 바닥으로 낮추어야 그 잔잔하고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양지바른 척박한 땅 위 혹은 바위 사이에서 세상을 향해 꽃잎을 벌리고 귀엽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 소소한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꽃을 알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아주 큰 즐거움이다.”》
이름 없는 들꽃은 없다, 그대가 모를 뿐
개불알꽃, 괭이눈, 금꿩의다리, 깽깽이풀, 매발톱꽃, 닭의장풀, 투구꽃…. 작고 고운 꽃에 웬 민망한 이름? 산과 들에 피어난 야생화의 모습을 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불알꽃은 분홍빛 둥근 주머니처럼 생긴 꽃송이 때문에 까치오줌통, 요강꽃, 복주머니난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괭이눈은 샛노란 가루가 뒤덮인 작은 꽃송이와 살짝 보이는 안쪽의 수술이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빛내는 고양이 눈과 비슷해 보인다. 꿩의다리는 꿩의 가는 다리처럼 생긴, 가장 가는 줄기를 가진 풀을 찾아보면 된다.
여름휴가 때 만나는 숲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숨은그림찾기’를 한번 해보자. 돌 틈에, 바위틈에, 물가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야생화들. 선명하지 않아도 흐드러지게 핀 작은 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 책은 우리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야생화 500여 가지를 생생한 사진을 통해 설명해준다. 국립수목원 연구관으로 있는 저자는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니며 탐사한 야생화의 생김생김, 비슷한 식물 구별하기, 꽃에 얽힌 이야기, 쓰임새, 씨앗을 받아 키우는 방법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대부분의 야생화는 우리가 그저 그런 잡초로 생각했던 꽃들이다. 그중에는 곰취, 돌나물, 머위, 삼지구엽초와 같이 식용이나 약용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꽃도 많다.
조선시대 때 서당에는 으레 앉은뱅이꽃, 즉 민들레를 심기도 했다. 나쁜 환경을 견뎌내는 인(忍), 뿌리가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剛), 꽃이 한 번에 피지 않고 차례로 피므로 예(禮), 줄기를 자르면 흰 액이 젖처럼 나오므로 자(慈), 약으로 이용하면 노인의 머리를 검게 하여 효(孝), 흰 액은 모든 종기에 효험이 있어 인(仁), 씨앗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람을 타고 멀리 가 새로운 후대를 만드니 용(勇), 이렇듯 민들레는 많은 덕을 가지고 있다 하여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서당에 심었다.
금낭화는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수줍은 듯한 진분홍빛 꽃송이는 휘어진 줄기에 조랑조랑 매달리고, 끝이 양 갈래로 갈라져서 위로 살짝 올라간 하트 모양의 꽃잎이 일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낭화를 앞마당에 가득 심고 싶어도 산에 있는 것을 함부로 캐오면 안 된다. 6월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을 때 씨앗을 받아 뿌리면 된다. 씨를 받으면 쉽게 많은 야생화를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함부로 캐내기만 한다. 결국 지천에서 흔하던 개불알꽃, 금낭화, 고란초, 삼백초, 매화마름 등 많은 야생화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여행작가 양영훈 씨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에피소드도 간간이 섞여 있어 자칫 따분하기 쉬운 식물이야기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재밌게 들린다”고 이 책을 추천했다. 이번 휴가 때 곰취, 금매화, 꽃창포, 산수국, 비비추, 참나리, 해란초와 같은 여름철 야생화를 한 번쯤 찾아보심이 어떨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